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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親日人名辭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한국인(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11월 8일에 발간한 인명사전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들에 대해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을 수록하였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11월 8일에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자들의 목록이다.
전체 인원은 중복 분류된 인물을 제외하고 4,776명이다. 여러 분야에 중복 수록된 인물 431명을 포함하면 총 5,207명이 된다.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해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홍난파, ‘선구자’ 윤해영, 가수 반야월, 배우 문예봉 등이 포함됐다.
이력
2001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요 과업으로 삼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
2001년 12월
개인 1850명과 185개 단체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이 출범했고, 당일 여러 분야의 12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재단 산하 특별 위원회로 발족.
2004년 1월
16대 국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 5억 원 전액을 삭감(위원장 박종근).
2004년 1월 8일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누리꾼) 모금 시작(오마이뉴스와 공동).
2004년 1월 15일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에 공문을 보내, 이 모금 운동이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저촉된다며 모금 운동 중단을 요구했으나 4시간 만에 철회함.
2005년 8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사전편찬위원회는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8월 29일을 맞아 1차로 〈친일인명사전〉에 실릴 인물 3,090명을 발표했다.
2008년 4월 29일
…
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를 수록대상으로 선정하였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선정의 원칙은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 중복성, 지속성 여부이다.
명단
다음 목록은 각 분야별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명단이다. 인원 수는 중복 분류된 인물을 포함한 것이다.
☞매국 : 21명
☞수작/습작 : 138명
☞중추원 : 335명
☞제국의회 : 11명
☞관료 : 1,207명
☞경찰 : 880명
☞군 : 387명
☞사법 : 228명
☞친일단체 : 484명
☞종교 : 202명
☞문화/예술 : 174명
☞교육/학술 : 62명
☞언론/출판 : 44명
☞경제 : 55명
☞지역유력자 : 69명
☞해외 : 910명
☞기타 : 김명학, 김진국
정관계 인사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 활동 경력이 다수 확인됐다. 1939년 ‘만주신문’에는 그가 당초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했다가 탈락한 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것이다’라는 편지를 동봉해 다시 입대원서를 낸 사실이 보도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만주군 소위, 일본군 소위 예비역 신분으로 러일전쟁, 중일전쟁에 수차례 참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면 전 국무총리도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은 경력으로 사전에 등재됐다. 부통령까지 지낸 김성수 보성전문학교교장도 1938년 친일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이사직을 맡아 시국강좌 등을 통해 일제가 벌인 전쟁을 미화하고 일제 징병제를 독려하는 글을 수차례 발표했다.
언론인 / 문인
장지연은 1905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투옥된 뒤 풀려나 1909년부터 경남일보 주필 등으로 활동하며 경남일보매일신보 등에 일제와 천황을 찬양하는 한시를 수차례 남겼다.
방응모는 1932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한 뒤 수차례의 시국강연을 통해 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를 독려했으며 월간지 ‘조광’을 창간, 대동아전쟁의 당위성과 충성을 다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