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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황(敎皇, 라틴어: papa, 그리스어: ππα)은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로마의 주교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다. 그리스도교 창시 이래 2천 년 동안 총 264명의 교황이 있었으며, 현재(265대)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이다.
교황의 직위를 가리켜 교황직(敎皇職, papatia)이라고 부르며,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 영역은 ‘성좌’(Sancta Sedes) 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순교한 로마 위에 세워진) ‘사도좌’로 불린다.
역사적으로 교황은 종교 외에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권리 및 의무를 누려 왔다. 교황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시국이라는 독립된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세속 지도자이며, 그 나라는 로마 시에 둘러싸여 있다. 1870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기 이전까지 교황의 영토(교황령)는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으로서 독립적인 권한을 지녔다. 이후 1929년 라테란 조약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였다.
초기 교황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고 교리적 논쟁을 해결하는 데 몰두하다가 차츰 세속 문제에도 개입하여 수천 년간 서유럽에서 황제의 대관식(샤를마뉴는 교황을 통해 즉위한 최초의 황제였음)을 주관하였으며 세속 통치자들끼리의 각종 분쟁에 개입하였다. 8세기까지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로마를 중심으로 교황이 실질적으로 다스렸던 지역은 피핀의 기증을 시발점으로 교황령의 기원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또한 로마 교황이 서유럽의 다른 군주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중세 시대에 세속 군주들과 권력 다툼을 벌여왔던 교황들은 가톨릭 개혁 이후로 점차 세속 권력이 약해지자 본연의 임무인 종교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세…
역사
1. 초세기
2. 중세기
2. 중세기
6세기 말엽,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일어난 혼란을 수습하고 서방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그는 활발한 선교 활동을 통해 게르만족과 앵글로색슨족을 개종시켜 서유럽 각지에 성당을 세우고, 로마와 교황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쳐 서서히 독립적인 지위를 획득하여 갔다. 특히 전 중세기 동안 사제 양성의 기초가 된 《사목 규정》을 저술하고 전례를 개혁했으며 미사 전문을 오늘날의 형식으로 만든 업적 등으로 유명하다.
7~10세기 교황들은 세속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10~11세기에는 정권의 동요와 경제불황 등으로 사회혼란을 겪었으며, 교황권이 약해지면서 성직자들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성직 서임권을 놓고 왕권과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880~1046년까지는 이렇게 ‘암흑 시대’라고 불리는 교회 역사가 이어진다.
또 서방 교회의 독립적인 색채가 강해지면서 동방 교회와의 거리감도 심화하였다. 이 문제는 8세기 성상 파괴운동 이래 표면화되었으며, 9세기에는 필리오쿠에 문제와 그에 따른 포티우스의 분리 등에서 만성적인 불화가 잇달아 일어났다. 1054년에는 해묵은 수위권의 시비로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가 서로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동서방 교회 대분열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최대 분열 사건으로 결국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 간의 관계는 단절하게 됐다. 이후 12~13세기 교황들은 공의회를 여러 번 열어 동서방 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점거한 사건과 피렌체 공의회 이후 로마가 약속했던 군사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공략당한 사건, 또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회가 동서방 교회 간 화해에 반대하고 나선 것 등을 들 수 있다.
동방 교회와의 분열 이후 교황의 영향력은 당연히 서방 교회 내부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