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사 - 조선의 건국에 관해
목 차
◎고려말의 상황
◎조선의 건국 과정과 태조 이성계
◎이성계의 업적
◎조선건국이념
◎조선건국의 의의
◎고려말의 상황
1.권문세가의 횡포
권문 세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한편, 원의 세력과 결탁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수탈을 자행하여 전제를 문란하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반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원의 세력과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권문세가를 눌러야 했는데, 원의 압력으로 왕권 기반이 약화되고 또 개혁 추진 세력이 성립되지 못하여 혼란만 거듭되었다.
2.신진사대부의 등장
신진사대부는 대체로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지방 출신으로 무신 정권이 안정되는 최씨 집권기부터 형성되어 이후 커다란 사회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신진 사대부는 권문 세가와는 달리, 대부분 지방에서 성장한 향리 출신이 많았다. 이들은 고려 후기 사회 경제적 변동을 겪으면서 중소 지주로 성장하여 학문적 교양을 쌓고 과거를 통해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였다.
신진 사대부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자, 이미 세력 기반을 닦은 권문 세가와 충돌을 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권문 세가에 비해, 신진 사대부의 세력이 미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문 세가들이 강대한 원 세력과 결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을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원의 세력이 약해진 공민왕 때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3.외적의 침입
-홍건적
홍건적은 원 말기에 일어난 한족 반란군의 하나로, 비밀 종교 결사인 백련교를 등에 업고 삽시간에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 중에 한 무리가 요양까지 진출하였다가 원의 반격을 받고 고려 …
-왜구
4.명나라의 등장
중국에서는 원나라가 쇠퇴하고 새로 명나라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5.철령위 문제
세우고 비로소 고려의 벼슬을 받았다
2. 동북면 장악과 군사적 성공
1361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 兵馬使)로 임명되어 동북면(東北面)지방의 실력자가 되었다. 이성계는 이러한 가문의 배경과 타고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하여 크게 활약함으로써 점차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361년 10월에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만호 (禿魯江萬戶) 박의(朴儀)를 잡아 죽였으며, 같은해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자 이듬해 정월 친병(親兵:私兵)2, 000명을 거느리고 수도탈환작전에 참가, 제일 먼저 입성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1362년 1362년 원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수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홍원지방으로 쳐들어와 기세를 올리자 그는 동북면병마사에 임명되어 적을 치게 되었다. 여러 차례의 격전 끝에 마침내 함흥평야에서 적을 대파, 격퇴시켜 명성을 크게 떨쳤다.
1364년 최유(崔濡) 가 원제(元帝)에 의하여 고려왕에 봉하여진 덕흥군(德興君)을 받들고, 원병(元兵) 1만명을 인솔, 평안도 지방에 쳐들어오자, 최영(崔瑩)과 함께 수주(隋州) 달천(獺川)에서 이들을 섬멸하였다. 이무렵 여진족은 삼선(三善), 삼개(三介)의 지휘 아래 동북면에 침범, 함주까지 함락시켜 한때 기세를 올렸으나, 그는 이들을 크게 무찔러 격퇴함으로써 동북면의 평온을 되찾았다. 이 해에 밀직부사의 벼슬과 단성양절익대공신(端誠亮節翊戴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뒤 동북면원수지 문하성사(東北面元帥知 門下省事)화령부윤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377년(우왕 3)크게 창궐하던 왜구를 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대파하였으며, 1380년에 양광, 전라, 경상도 도순찰사가 되어, 아기바투(阿其拔都: 阿只拔都)가 지휘하던 왜구를 운봉(雲峰)에서 섬멸하였다. 그 전과는 역사상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알려질 만큼 혁혁한 것이었다.
1382년 여진인 호바투(胡拔都)가 동북면일대를 노략질하여 그 피해가 극심하자, 동북면도지휘사가 되어 이듬해 이지란(李之蘭)과 함께 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