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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불교, 중국의 도교, 중국과 한국, 인도의 불교문화 비교
중국의 불교
중국의 불교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전 역사를 통하여 중국인의 생활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최근 수세기 동안 중국에서 불교가 쇠퇴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불교의 중국문화에 대한 영향과 중국인들의 삶에 지속적인 자취를 남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송대 발흥한 신유학은 다양한 불교적 사유에 자극되어 발전한 것이며 도교의 경전과 신 등의 요소는 불교에서 가져간 것이다. 불교용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 단어와 성어들이 중국어에 남아있으며 천문학, 역학, 의학 등에서 중국인들은 인도의 승려들이 가져온 지식의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중국인들의 종교적 삶이 불교가 가지고 온 교리와 수행 및 신격과 의례에 의하여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전래와 발전역사
동서간의 문화교류는 여러 세기 동안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른바 ‘비단길’로 불리는 중앙아시아 육로를 통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문물의 전파는 동양과 서양 양쪽에 상당한 문화적 변모를 가져왔다. 불교는 그 중에서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은 상이한 역사로 인해 정신적, 심리적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불교(佛敎)란 불(佛, Buddha란 `알다`,`깨닫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어근 budh의 과거 수동분사로서 `안 사람`,`깨달은 사람`의 뜻이다)의 교(敎)이다. 즉 깨달음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깨달음이란 어디까지나 자각, 즉 스스로 깨달음의 체계이기 때문에 불교의 특징은 교주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悟)에 …
위진남북조시기는 중국불교의 성장기이다. 이 시기 불교가 중국인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교가 뿌리를 잃고 사상적 공백을
의 여러 지방에 세워졌다.
불교를 중국에 처음 전한 사람은 무역업자들이지만 적극적인 전도사업은 선교사들에 의해 행해졌다. 한나라 말기에는 안식국(安息國)의 왕자 안세고(安世高)가 소승불교를 전파하고 불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소승불교에서는 세상을 등지는 출가를 주장했는데 이것은 이 세상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처음 들어온 소승교의(小乘敎義)의 천당, 지옥, 윤회등의 설이 고유의 음양참위설과 결합하여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미신으로 발전했다. 점점 불경을 근거로 종교를 전파시키고 사원, 사당이 보편화되었다. 게다가 서역으로부터 들어온 승려들이 불경을 번역하고 저술하여 상류층에 보급시키고 보권(寶卷)이라는 불곡(佛曲)이 대중 속에서 유행하면서 불교는 대중 속 깊숙히 파고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대월지국의 명승 지루가참이 낙양으로 들어와 `반야경(般若經)`을 번역하면서 대승불교가 전파되었다. 그 뒤 인도종교를 중국에 전도하는 데에는 선교사들보다 중국인 개종자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승불교는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구별하였기 때문에 신도들의 이해수준에 맞도록 조절된 상대적 진리를 표현하는 관념들을 함께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된 관념들까지도 받아들였다.
역사적으로 석가모니가 만든 종교는 신이 없었지만 대승불교의 신도들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신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부처들을 가졌다. 그들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 菩薩)라는 새로운 형태의 신격(神格)을 발전시키도록 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나란히 들어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승불교는 성행하고 소승불교는 쇠미해졌다. 그래서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불교의 교리는 중국의 문화전통과 결합하였으며 유가사상에 빠진 사람들도 대승불교는 성현의 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시기는 중국불교의 성장기이다. 이 시기 불교가 중국인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교가 뿌리를 잃고 사상적 공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