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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의 의생활
로마인들에게 옷이란 계급과, 신분 및 가지고 있는 권위에 따라 달랐다. 대 제사장의 경우 상징적인 옷을 유니폼의 형태로 입었는데, 이것은 로마의 유산으로 서양 문명에 영향을 준다. 고대 로마인들은 옷을 그들이 가진 지위에 대한 인식적 수단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특히 자유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디자인이 되었고, 이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전형적인 로마 복식은 특별히 구분되는 옷일수록 그가 특별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임을 알아 볼 수가 있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평범한 옷을 입고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드레스와 사회적 지위의 상호작용에 대해 강조했으며, 이것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요구되었다. 또한 로마 복식을 처음으로 살펴보면 그리스 복식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드레이프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면밀이 살펴보면 많은 중요한 면이 변했다는 게 발견 된다.
전형적으로 로마의 의복은 주로 양털을 재래하여 만들어 졌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이것으로 옷을 짜서 입었는데 부유하지 못한 로마 여성들은 이 수작업을 계속해서 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당시, 직물과 연관된 작업들을 이용한 상업거래가 왕성했다. 옷은 유황등을 이용하여 깨끗하게 했다. 그 외 면과 실크 원단들은 공화국 말기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확실하진 않다. 알렉산더의 군대에 있던 남자들은 인디아에서 자라고 있는 목화를 볼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분명하고 섬세한 색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의복의 종류
1. 토가
토가는 로마에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의상이다. 오직 로마의 시민들만이 토가를 입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는 않았는데 로마가 시민권을 포로들에게도 종종 주었기 때문이다.
토가는 로마 시민의 표시로 초기에는 남녀가 다 튜닉위에 둘러 입었고, 제정시대 이후부터 지배계급의 남…
2. 튜닉, 튜니카
3. 스톨라
4. 팔라, 팔리움
5. 클라비
6.팔루다멘툼
7. 파에눌라
방법은 달랐다. 이것은 사각형으로 입는 사람의 어깨로부터 바닥까지의 길이에서 3배정도 되는 기장으로 남자, 여자, 어린이, 시민, 군인 등 다양한 계층이 소화했다. 여자들은 팔라를 야외활동에 썼는데, 종종 머리를 감싸기도 했지만 베일등과 같이 사용했다.
5. 클라비
클라비는 튜니카의 어깨에서 아랫단까지 색 있는 수직선의 장식선을 말한 다. 선의 폭이 좁은 것은 3/8인치에서 3~4인치 너비의 넓은 것이 있는데, 클라비의 너비가 넓은 것은 가장 높은 계급의 상징으로 원로원 의원이나 정부 고관들이 입을 수 있었다. AD 4세기 경에 클라비는 한 가지 색의 천이 아니고, 사자/토끼/양 등 동물모양이 모티브로 짜여진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 시대 튜니카는 소매가 있고 옷 길이가 길어졌으며, 클라비는 단순한 장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3세기경부터 일어났고 4세기에는 튜닉의 어깨나 옆도련에 장식적인 모티브로서 세그맨태가 있었다. 이 네모꼴이나 원모양의 단독무늬 안에는 다시 작은 무늬로 가득 채워졌다. 이 단독 무늬는 반원형의 맨틀이나 클라미스에도 있었다.
6.팔루다멘툼
그리스의 클라미스를 로마에서 받아들여 발전시킨 의복으로, 직사각형의 천을 어깨에 두르고 오른쪽 어깨에서 피불라로 고정시켜 입었다. 공화정 초기에 장군들이 입었고, 로마제국 시대에는 황제나 장군들이 튜니카 위에 입었다. 이 팔루다멘툼은 5세기 이후 비잔틴 황제의 공복이 되면서 자색비단에 타블리온 장식이나 수를 놓는 등 화려한 옷으로 변형되었다.
7. 파에눌라
토가 다음으로 로마의 모든 계층에서 많이 입었던 판초형의 외투로 여행을 할 때나 비가 올 때 입었다. 형태는 큰 원형 천의 가운데 머리가 들어갈 부분이 째어져 있거나 앞중심이 도련까지 터진 것이 있다. 끝이 뾰족한 후드가 달렸으며 모직물이나 가죽으로 만들었고, 회색, 갈색, 자주색, 검정 등이 있었다. 파에눌라는 후기에 이름이 캐슐라로 바뀌었고 다시 오늘날의 천주교 전례복인 채서블에 그 자취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