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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싸릿골의 신화’와 ‘웰컴 투 동막골’보고
‘싸릿골의 신화’와 ‘웰컴 투 동막골’은 둘 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줄거리와 제작의도 및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도 크게 차이가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맥아더의 지휘로 연합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다. 이 작전으로 고립된 인민군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거나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었다. 연합군 폭격기들은 숨어있는 인민군 소탕을 위해 곳곳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그 중에는 민간인 지역도 있었다.’
라는 짧고도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그 딱딱하고 건조한 말투 속의 소위 ‘민간인 지역’은 영화 속에서 동막골이라는 평화롭고 순수한 마을로 나타난다.
전쟁 중 비행기 사고로 동막골에 추락한 연합군 공군 대위 스티브, 부하들과 함께 길을 헤매던 중 남한군의 습격을 받아 살아남은 리수화 일행, 한강다리를 폭파하라는 상관의 명령으로 다리를 폭파하지만 죄책감으로 탈영해 나온 표현철과 자살하려는 표현철을 구해준 남한군 의무병 문상상 들은 전쟁으로 황폐화 된 바깥세상과는 달리 아이들이 뛰어놀고, 총을 들이대도 동작그만은 커녕 자기 하고 싶은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는, 소위 조상들이 대대로 ‘막살아라’해서 이름 붙여진 동화같은 마을 동막골에 함께 있게 된다.
그들은 처음 마주치자마자 총과 수류탄으로 서로를 위협하고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심리전을 벌인다. 그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은 “손 들어 !”라는 명령에 “두 손 다드나유 ” 라든지 “움직이지마 !” 라는 명령에 “ 뒷간 !” 이라고 외칠 뿐만 아니라 정신이상자 여일이 수류탄 고리를 반지로 착각하…
한편, 영화 ‘싸릿골의 신화’는
이때 인민군에게 포위되어 갈 길을 잃은 낙오병 7명을 인솔한국군 소위가 강노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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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노인은 양장댁을 찾아가 이 고을에서는 전쟁 중이라도 죽고 죽이는 일이 없는 신화를 이룩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이 자발적으로 강노인의 뜻을 따르던 중, 마침내 편문원이 인민군 몇을 데리고 마을을 점령하게 된다.
학교를 폐쇄하고 마을 조직을 재편하는 등 위대한 인민군을 도와 전쟁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인민군에 위기감을 느낀 하사관은 한밤에 부하들을 모아 최악의 경우 총을 잡기를 결의하지만, 뒤따라온 경수는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없다며 그를 말린다.
국방군의 은신처를 말하라고 다그치며 이에 숨어 있던 국방군들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인민군들과 필사적으로 격전을 치른다. 때마침 김 소위가 지휘하는 지원부대가 도착하여 인민군들을 쳐 부수고 싸릿골에 평화가 다시 찾아온다.
먼저, 줄거리 측면에서 ‘싸릿골의 신화‘와 ’웰컴 투 동막골’은 그 설정자체가 조금 다르다. ‘싸릿골’에서는 국방군 낙오병이 먼저 도착해 숨어있을 때, 인민군 장교 일행이 찾아온다. 그리고 결말은 국방군이 인민군을 소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싸릿골은 동막골과 그 내부가 다르다. 국방군이 왔을 때, 마을 사람 중 일부는 그들을 무서워하며, 나중에 온 인민군 장교는 이 마을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이다. 반면에 ‘동막골’에서는 국군과,연합군과, 인민군이 거의 동시에 마을로 모이며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또한 그들은 적은 서로가 아니라 ‘전쟁’, ‘이념’ 그 자체이다. ‘웰컴 투 동막골’ 중에서 인민군, 국군, 연합군인들이 군복을 벗고 민복을 입은 채로 농사 일을 하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군복과 사상만 벗어던진다면 모두가 다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배경적인 차원에서 ‘싸릿골’과 ‘동막골’을 비교해보면, 영화는 둘 다 ‘싸릿골’과 ‘동막골’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동막골’은 파란하늘과 때묻지 않은 초원 등의 환상적인 배경 묘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