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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명윤리-안락사] 존엄한 죽음[존엄사에 대해서]
1971년 네덜란드의 의사였던 포스트마는 양로원에서 생활을 하던 어머니의 끊임없는 하소연을 받고 이에 동의를 하였다. 당시 어머니는 뇌일혈로 신체일부의 신경학적 마비가 있었고 심한 언어장애와 청각장애가 있었으며 양로원에서는 환자가 쓰러지는 것을 막고 고정하기 위해서 그녀의 어머니를 의자에 묶어 두었다. 포스트마는 이런 어머니의 인간 이하의 모습에 견딜 수 없어 어머니에게 모르핀을 주사한 뒤 장시간 작용하는 근육이완제인 큐라레를 주사하여 호흡마비로 죽게 하였다. 법원에서는 그녀를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안락사라고 판단하여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 1)
1975년 21세의 카렌 퀸란은 약명 미상의 알약을 몇 알 복용 후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술을 마신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6개월 간 정맥 주사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단과 카톨릭교회법에서는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생명을 연장시킬 의무가 없다는 본당 신부의 신학적 해석에 따라 환자가 품위와 존엄 속에서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해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의사가 이를 거정하자 이 문제는 법정으로 옮겨졌고, 인공호흡기의 제거는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판정 받았다.
그 후 1976년 뉴저지주 대법원은 의사와 병원당국이 찬성한다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고 인공호흡기는 제거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인공호흡기 없이 9년간을 더 생존하다 1985년 간염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2)
위의 이야기들은 안락사와 관련된 사례들이다. 첫 번째 포스트마의 경우는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며 두 번째 카렌 퀸란의 경우는 `존엄사`에 해당하는 대표적 사례로서 알려…
포스트마의 사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라는 부분이었다.
이나 그 간격은 엄청나다. 고통 받는 환자의 자율성도 물론 존중되어야 하나 그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생명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부여받지 못했다. 그 생명이 죽음을 향해 가는 꺼져가는 불씨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을 종결시킬 권리는 인간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안락사 합법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반대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한 편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시작 되지도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적극적 안락사 합법화를 공론화시키는 것은 급진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카렌 퀸란의 사례를 통해 `존엄사`에 대해 먼저 숙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겠다.
카렌 퀸란의 사례는 최초의 존엄사 판결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에서 1976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2000년 대 우리나라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최근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세브란스 김할머니의 사례에 의해 다시 공론화 되었다. 2009년 6월 대법원은 1년 4개월 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김할머니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로 볼 수 있으나 이 의견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음을 밝혀둔다.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지만 위장 삽관을 통해 영양공급을 하였고 항생제 처방, 이뇨제 등의 내과처방도 하였기 때문에 존엄사가 아닌 인공호흡기 제거를 통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한정하여 볼 수도 있다. 김할머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는 존엄사 합법화의 찬반에 대한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존엄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다루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죽음에 대해 본인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리 쉽게 갈지라면 먹고 입고를 맘대로 허고, 씌고자푼 돈 다 서보고 오고 갈디를 다 봐볼건디 일만 하다가 나는 가오. 일만 하다가 갈라고 허니 못 가겄소 못 가겄소. 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