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경주 남산
경주시내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산이 금오산(金鰲山, 471m)이고 그 남쪽에 솟은 산이 고위산(高位山, 495m)인데, 남산이란 이 두 개의 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40여 개의 계곡을 통틀어서 말한다. 경주 남산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탑동, 배동, 내남면에 속해있고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금오산이 본 이름이다. 남북이 8㎞, 동서의 길이가 약4㎞이며, 높이가 468m(또는 471m라고 표기된 것도 있다)의 금오산과 495m의 고위산 두 정상을 가진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아담한 산이다. 남산의 그 많은 유적들의 흔적은 누구나 찾으면 볼 수 있음은 물론,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여유를 갖는다면 남산에 흩어져 깃들고 있는 많은 노래나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향가도 있고 기막힌 설화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모르고 넘으면 단지 경주 남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일뿐이다. 그러나 알고 넘으면 구구절절 마음을 두드리는 사연들이 남산자락 곳곳에 서려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고위산 정상 금오산 정상
1. 남산 설화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만불산(萬佛山)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은 당나라 대종황제(代宗皇帝)가 불교를 깊이 믿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工匠)에게 명하여 오색 모직(五色毛織)을 짜고 침단목(沈壇木)에 명주(明紬), 미옥(美玉) 같은 보배 구슬로 꾸민 가산(假山)을 만들게 하였는데, 높이가 한발 남짓하였다. 그것을 오색주단(五色綢緞) 위에 놓았다. 산에는 높은 바위와 기이…
출처 : http://blog.daum.net/js4bs/1505934
2. 광덕과 엄장의 설화
3. 문수보살에게 혼이 난 경흥스님의 이야기
문수보살상
경흥은 그 말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란다. 시종
가 장사를 지낸다. 장사를 지낸 뒤 엄장은 광덕의 아내에게 욕정을 토로한다.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자기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떠냐고 프로 포즈를 한다. 광덕의 아내도 좋다고 허락하여 그 때부터 소위 동거생활에 들어가는데, 밤이 되어 부부관계를 갖기를 청하면 광덕의 아내는 `당신이 정토를 구하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 격`이라면서 깨달음을 촉구한다. 광덕과 함께 서방정토에 가기를 서원하였는데 그것을 잊고 부부관계나 청하는 욕정을 가지고 어떻게 서방정토에 갈 수가 있겠는가 하는 나무람이다. 이 나무람을 듣고 엄장은 광덕이 도를 닦아 정진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서방정토에 갈 수 있게 된다. 광덕의 처가 두 사람을 서방정토에 보낼 수 있었던 원력을 가진 것도 대단하고, 그를 통해 깨달음을 갖고 정진했던 광덕과 엄장 또한 큰 인물이라 하겠다. 그들이 정진했던 터가 바로 남산이었으니 남산의 정기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3. 문수보살에게 혼이 난 경흥스님의 이야기
아무래도 남산의 클라이막스는 문수보살에게 혼이 난 경흥스님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신문왕 때 경흥이란 큰 스님이 있었다. 신문왕은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경흥을 국사로 삼아 나라의 대소사를 의논하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경흥을 불러 대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시종들이 준비한 행차차림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한데, 지나가던 한 거사가 거지꼴을 하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등에는 광주리를 지고 곧 행차하려는 경흥의 말 앞에 와서 쉬었다. 시종들이 이 남루한 거사를 보고 나무랐다.
문수보살상
`승복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더러운 물건을 지고 다니는가` 거사가 짊어진 망태 속에 비린내 나는 말린 생선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이른 말이다. 거사가 지나가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다리 사이에 산고기를 끼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세 번이나 사고 판 생선을 등에 지고 가는 것이 무슨 흠이 되겠는가 .`
경흥은 그 말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란다. 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