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선 위항 문학사 - 위항건축 배경으로서의 위항문화
목 차
서론 - 조선의 문학
방외인, 방외인 문학
위항, 위항인, 위항문학
도시-서울의 발달과 위항인
위항의 시사와 예술 활동
조선 후기 위항 시인들의 시사와 모임터
결론 - 위항건축 배경으로의 미학적 분위기
참고문헌
서론 - 조선의 문학
한문 고전의 문화적 배경인 동아시아의 한문 문화권에는 일찍부터 유불도의 사상이 인간사회와 자연세계의 관계 및 그 중심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대표해 왔던 전통이 있으며 그러한 사유인식은 현실권의 문학과 방외적 취향의 문학에 다각도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경향의 조선 전기 한문학을 학자들은 관각문학, 사림파문학, 방외인문학으로 나누었다.
이 시대의 관각문인들은 현상적인 사물 속에 이미 심성의 도리를 조화롭게 구현하였으며
한문 고전을 통한 단련을 중시하면서 중세문학을 지탱할 만한 불변의 문학적 전범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형식주의자들 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형식을 통해 심성이라는 내용을 어떠한 착오와 갈등 없이 담을 수 있는 표준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고전주의적 가치를 지향했다고 본다. 또한 사림파들은 훈구화 되어가는 관각문인들과는 달리 재야의 문학을 추구하면서 현실참여를 위한 문학을 겸해야하는 양면적 성격 때문에 관각문학과 방외인문학 모두와 다르면서도 그것들을 어느 정도 포괄해야하는 고민을 내포하고 있다. 이 사림파는 훈신, 척결계열과 대립하는 재야의 사림을 배경으로 하여 정치세력을 형성했던 집단을 지칭하며, 16세기 일군의 재야 지식인들이 정치집단화 함으로써 형성된 협의의 사림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유학적 세계관을 심화시키고 더욱 넓은 사회적 기능을 자임하였다.
방외인, 방외인 문학
그리고 방외인문학은 ‘방외인’이 주체가 되어…
있다. 그들 중 위항인에 의한 위항문학은 방외인문학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된다.
위항, 위항인, 위항문학
위항문학은 ‘위항인’에 의해 창작된 한문학이다. 우선 위항인이란 용어의 근거인 위항이란 무슨 뜻일까 위항 또는 여항은 “예기”의 ‘단종’상편과 “사기”의 ‘이사열전’등에 나오는데, 그 원의는 ‘꼬불꼬불한 거리 또는 골목’으로 ‘인구가 조밀한 주거지’란 의미이며 동시에 지배층이 아닌 피 지배층의 거주지란 의미가 겹쳐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후기 문헌에 자주 나타나는 위항이란 말에는 구체적인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위항이란 어휘에 내포된 ‘인구의 조밀지역’이란 다름 아닌 도시의 주거지를 가리키며, 조선 사회와 관련지어 서울의 비 양반층의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즉 위항이라는 어휘에는 조선후기 서울이 경험한 변화, 즉 양반 중심의 도시에서 비 양반층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해 갔던 시대적 변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가끔은 문헌에서 시정이라는 원의와 가깝게 또는 특수한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것을 확대하면 위항인 이란 도시에 거주하는 비 양반층 전체를 포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위항인은 거의 예외 없이 경아전과 기술직 중인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다. 이에 일단 위항인 부류의 주축을 경아전과 기술직 중인으로 잡을 수 있고, 좁게는 이처럼 경아전과 기술직 중인이 된 특정부류의 한문학이 위항문학이다. 위항시, 즉 위항문학은 이 특정부류인 위항인들의 한시를 가리킨 것이다. 이것이 위항문학이란 용어가 일정한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게 된 까닭이다. 그 외에 위항인들에는 그들과 동등한 위상을 가진 액속, 시전상인, 군교, 의금부 나장, 승정원 사령 등을 위항인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조선 후기 “홍재 전서”의 자료는 양반도 아니고 천민도 아닌 중간 신분 층을 따로 독립시키고 있다. 이 자료가 중인과 시정을 갈라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 두 신분은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