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국문학] 허균의 생애와 작품, 사상 분석
목 차
1.허균의 생애
(1) 가문
(2)성장수학(成長修學)
(3) 관직 생활
2. 홍길동전(洪吉童傳)
(1) 작품 형성 배경
(2) 내용 분석
3. 한문 소설 5편
(1)엄처사전(嚴處士傳)
(2)손곡산인전(谷山人傳)
(3)장생전(藏生傳)
(4)장산인전(張山人傳)
(5)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4. 인생관
1.허균의 생애
(1) 가문
허균(1569-1618)은 본관이 양천(陽川)이며, 경상감사 허엽(許曄)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우성전(遇性戰)의 부인인 큰누나와 맏형 성(筬)은 이복(異腹)이며, 둘째 형 봉과 둘째 누나 난설헌은 당대에 문명을 떨친 문인이었다.
허균은 호를 교산, 성수, 성성옹, 백월거사라 하였고, 자는 단보였다.
부친 초당 혀엽은 소년기에 화담 서경덕 밑에서 수학했으며, 당시의 선비들 사이에 이름이 높았다. 명종 원년 문과에 급제한 이래, 선조 대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갈라질 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활약했다.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병을 얻어 사퇴하고, 얼마 후 상주 객관에서 64세로 사망했다. 이때, 허균의 나이 12살이었는데, 부친이 노쇠…
다하고 산수를 벗삼아 유랑하다가 금강산에서 객사한 사실은 막냇동생 허균의 인생관 형성에 큰 몫을 차지하였었다. 거기에 함께 약관 20세 전후의 허균에게 큰 영향을 미치었다. 더구나 12세에 부친이 사망한 이후의 허균은 모친 슬하에서 학업을 닦는 동안 이복 백형의 영향보다는 작은형과 누나의 감화를 더 많이 받았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허균이 그의 인생을 남달리 산 이면에는 위와 같은 가정 환경 못지 않게 서자 출신인 손곡 이달에게서 수학했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서자들과 친분을 많이 갖게 되고 나아가 그들에 대한 사회 제약적 부당성과 슬픈 호소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허균은 유년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고, 형과 누나에게서 유학과는 거리가 있는 이단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성품이 엄격한 이학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무검한 편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렇게 학습하여 누나 난설헌이 사망한 해인, 허균의 나이 21세 때 생원 시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3년 후인 선조 25년,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에 임진왜란을 만나서 모부인을 모시고 외가 곳인 강원도 강릉 교산으로 피난하여 외조부가 거처하던 애일당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2년 후, 선조 27년인 허균의 나이 26세에 비로소 대과인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였고, 이어서 3년 후인 선조 30년 4월 9일, 그의 나이 29세로 문과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3) 관직 생활
허균의 나이 26세에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후 문과중시에 장원한 29세까지 3년 동안은 임시직의 성격인 예문관검열, 세자시 강원설서, 춘추관기사관 등의 직분을 맡아 되어 있었다.
허균의 본격적인 관직 생활은 대과에 장원급제한 29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39살이 되던 선조 40년까지 10년 동안은, 동서 붕당(東西朋黨)의 정쟁이 치열하였던 정치사회의 혼란 때문에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허균은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