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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 서양 미술사 정리
1. 원시미술 - 신비에 싸인 기원
위의 제목의 원시(Primitive)라는 용어는 `미개인` 또는 그들이 우리보다 단순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거쳐온 문명 이전 상태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라는 뜻에서 사용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미술작품들 중에서 가장 오랜 된 것은 구석기 시대,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전의 동굴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그려지고 조각된 것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창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술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원시인들은 무엇이 그림이고 무엇이 현실인지를 잘 분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창에 찔린 동물들을 보면서 동물보다 자신들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공포심을 제거하여 자신있는 사냥을 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주술적인 힘을 빌리려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괴이한 모양의 물건들에 자신의 상징을 새겨 넣는 과정에서 이른바 부조라는 것을 창조하게 되었을 것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기원전 15,000~10,000 오스트리아)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항(풍요와 다산이 아닐까)을 작품에 실어서 표현한 것임을 추측 할 수 있다.
빌렌도르프 비너스Willendorf, Venus of(기원전 25000∼20000)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여성나상(女性裸像). 빈의 자연사박물관 소장.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7개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에서 제2의 9층(層) 문화층에서 발견된 것으로, 발견된 여러 개의 유물 중에서도 가장 알려져 있다. 여성나상은 2개가 출토되었는데 하나는 높이 10.3 cm의 석회암제이고, 다른 하나는 19 cm의 상아제이다. 유방복부둔부 등이 극단적으로 과장된 이 나상은 생식출산(풍요다산)을 상징하는 주술적원시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 시기는 오리냐크기(期)에 속한다.
이 중에 현저한 유적들은 19…
2. 이집트 미술 - 영원을 위한 미술 (B.C.3000 ~ 300)
옥한 유역에서 각기 거창한 문명이 바야흐로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곳들을 중심으로 왕이 통치하는 고도로 조직화된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또한 도시와 문화가 발전하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유사시대로의 생활양식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그들의 최고의 작품은 역시 회화였다.
이 작품들을 볼 때, 형상에 거의 사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영효과가 없고, 벽에 밀착된 것처럼 평면적이고 형상의 세부묘사가 생략되어 있다. 약화법으로 간단히 그려진 단순화된 형상들은 서로 겹치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관념없이 이집트 미술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사지의 육체를 떠나 따로 삶을 누린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후생활에 있어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육체가 필요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이집트인들은 미이라를 만들고 천으로 그것을 싸서 아무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견고한 관에 넣었다.
또한 이집트인은 죽은 사람의 영혼도 살아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활용품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기에 일상의 자재도구등을 분묘에 비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분묘에 매장이 불가능한 것은 묘실의 벽에 그림으로 그렸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에서는 분묘가 건축, 조각, 회화의 거의 모든 것을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집트 미술은 문자 그대로 死者를 위한 미술이라 할 수 있다.
중왕국 시대에 히크소스족의 침입으로 테베라는 도시를 제외한 전 이집트의 지배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기원전 1570년경 테베의 군주들은 침략자를 축출하고 이집트 전토에 통일된 지배권을 되찾았는데, 이와 같은 이집트 황금시대의 도래를 신왕국 시대라고 일컫는다.
이 시대의 미술의 특징은 2000년 전에 정립된 회화 및 조각의 엄격한 규칙을 답습하고 있기는 하나, 때로는 대담한 자유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규모에 있어서 아주 큰 것이 있는가 하면, 섬세하고 우아한 작품도 엿볼 수 있다.
헤시라의 분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