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 - 발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수업을 듣기 전과 후의 인식 변화
Ⅰ.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 근대화론
Ⅱ.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
Ⅲ. 박정희 정부와 유신체제
Ⅳ. IMF와 발전국가의 해체
Ⅴ. 황장엽의 대북정책
Ⅵ. 민주노총 충격보고서와 조갑제 교과서
Ⅰ.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 근대화론
1) 기존 의식
일제 강점기 30년의 세월은 일제가 조선을 향한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조선은 18세기부터 자본주의의 맹아가 트고 있는 나라였다. 특히 경제부분을 살펴보면 덕대와 같은 경영 전문인이 나오고 있었고, 광산개발 분야는 이미 민영화가 이루어져서 활발하게 자본투자가 되고 있었던 곳이다. 또한 신분제 역시 무너지고 있던 상황이기에 신분 간의 이동이 돈만 있으면 가능했다.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전 근대적인 조선의 체제들이 허물어지고 있었고, 앞으로 조선은 근대화의 길을 걸을 참이었는데 ...
본문/내용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 - 발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수업을 듣기 전과 후의 인식 변화
목 차
Ⅰ.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 근대화론
Ⅱ.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
Ⅲ. 박정희 정부와 유신체제
Ⅳ. IMF와 발전국가의 해체
Ⅴ. 황장엽의 대북정책
Ⅵ. 민주노총 충격보고서와 조갑제 교과서
Ⅰ.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 근대화론
1) 기존 의식
일제 강점기 30년의 세월은 일제가 조선을 향한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조선은 18세기부터 자본주의의 맹아가 트고 있는 나라였다. 특히 경제부분을 살펴보면 덕대와 같은 경영 전문인이 나오고 있었고, 광산개발 분야는 이미 민영화가 이루어져서 활발하게 자본투자가 되고 있었던 곳이다. 또한 신분제 역시 무너지고 있던 상황이기에 신분 간의 이동이 돈만 있으면 가능했다.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전 근대적인 조선의 체제들이 허물어지고 있었고, 앞으로 조선은 근대화의 길을 걸을 참이었는데 그때 일본 열강이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식민지화하였다. 그리고 일제치하 30년간 조선은 수탈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 10년간은 칼을 앞세워 조선인들을 무력으로 탄압하던 …
대화가 선결문제였다. 이에 따라 근대적 법과 제도들을 이식시키기 시작하고 근대문물들도 이때 조선에 물밀듯이 들어온다. 만약에 이러한 근대화 과정을 조선이 혼자서 하려면 30년의 시간으로는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이는 조선보다 메이지 유신으로 먼저 산업발전을 시작한 일본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 만든 근대화의 산물을 그대로 조선에게 옮겨준 것으로, 어떻게 보면 이것이 후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한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일제강점기는 그자체로는 일본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라고 항상 인식했던 조선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치욕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조선이 후에 빠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3) 토론과 수업을 통해 구체화된 생각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증식계획
식민지 수탈론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근대화론적인 입장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수탈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토지 조사산업과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근대화론자들의 완강한 부정이 기억에 남는다. 토지 조사 산업에 대해서는 사실 수탈론과 근대화론 두 측에서 서로의 증거를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서 내가 실증적으로 분석해볼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가치판단을 보류했다.
그러나 쌀 수탈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고등학교 책의 내용을 인용해보겠다.
1920년대 총독부의 경제 수탈 정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산미 증식 계획이다. 일제는 자국의 부족한 쌀을 식민지 조선에서 수탈할 목적으로 이를 실시하였다. 총독부는 농지개량, 종자개량, 수리시설 개선, 화학비료 사용 등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식량 생산을 대폭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이 기간 동안 많은 양의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을 통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산미 증식 계획의 결과 미곡 생산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가 목표한 증산은 달성되지 못하였고, 증산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