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히틀러와 세계정복
Ⅰ. 전쟁의 서막
1. 제2차 세계대전 개요
주요참전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상 추축국[樞軸國], Axis Powers)과 프랑스영국미국소련중국(이상 연합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둔 분쟁이 20년 동안의 불안한 잠복기를 거쳐 다시 폭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여러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이었다. 이 전쟁은 유럽 대륙 전역뿐만 아니라 태평양의 섬들, 중국과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세계의 바다를 무대로 전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지정학적 역사의 분수령으로서,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 여러 나라까지 뻗치는 결과를 낳았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 국가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000만~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동시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2. 추축국 형성과 주변 환경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국민의 굴욕감과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항, 바이마르 공화국을 괴롭힌 사회 혼란 및 정치 불안은 극렬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를 지향하는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초래했다. 1933년에 독재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은밀히 독일을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유럽 강국들이 독일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주저하는 것을 이용하여, 히틀러는 1936년 3월에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라인란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1936년에 미국…
3.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참전국들의 전투력
Ⅱ.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 독일의 폴란드 침공
9월 29~30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회담의 참가국들은 모두가 평화를 원했다. 나치스 독일은 수데텐란트 병합문제를 수습하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독일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와 정상회담을 통해 수데텐란트 지방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얻게 된다. 자신감을 얻은 독일은 덴치히 자유시를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하게 된다. 1939년 8월 31일 낮 12시 40분, 마침내 히틀러는 이튿날 새벽 4시 45분에 폴란드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침공은 명령대로 시작되었다.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는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독일이 재무장을 시작하면서 채택한 작전 개념인 고속 기갑전투가 첫선을 보인 무대였다 . 폴란드는 약 5,760km에 이르는 엄청나게 긴 국경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시범을 보이기에 최적격인 나라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폴란드 육군은 100만 명이라는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폴란드 육군은 애처로울 만큼 시대에 뒤져 있었고, 탱크, 병력 수송용 장갑차, 대전차포, 대공포도 전혀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독일의 공격은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되었다. 9월 중순에 이미 폴란드의 방어체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부대는 뿔뿔이 흩어져,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고립된 부대는 저마다 닥치는 대로 분투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9월 17일 소련군이 서쪽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들어왔다. 독일의 막강한 공군은 바르샤바 공습을 진행하였다. 히틀러 ‘너희들을 위해 이것을 준비했다’라고 말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를 위협하였다. 독일군은 총 70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독일군은 약 4만 5,000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폴란드군은 몇 배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었다. 이어 독일군과 소련군이 폴란드에 진군했고 이들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애초 독-소 조약에 반하여 독일군은 폴란드 중심을 더욱 깊이 차지하였고, 반면 소련은 리투아니아를 차지하였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스탈린의 지시로 러시아 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