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체육사 - 한국 고려시대의 체육
목 차
1. 시대적 배경
1) 사상과 문화
2) 고려의 사회계층
3) 문무와의 관계
4) 고려의 교육제도
2. 문,무의 정치적인 흐름
1) 묘청의 난
3. 고려시대의 체육
1) 무사체육
2) 유희체육
1. 시대적 배경
- 고려란
왕건이 건립한 나라로 왕건은 고려의 제1대 왕 (918~ 943 재위)
뛰어난 정치력과 덕망으로 고려왕조 창건과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태봉의 왕인 궁예의 부하로 있다가 호족세력을 배경으로 918년 포악한 왕인 궁예를 추방하고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 정하였다.
왕건은 도읍을 송악으로 옮긴 다음, 호족세력 통합정책, 북진 정책, 숭불정책(불교를 숭상)을 펴서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신라를 병합하고 후백제를 격파하여 민족의 재통일 성취하였다.
1) 사상과 문화
고려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사회였으며 불교는 국교로써 내적인 면 즉, 정신을 지배하면서 고도의 불교문화를 건설하였고 유교는 고려의 외적인 면에 취중하고 정치계를 지배하면서 학계와 정치적인 면에 공헌하여, 이 두 종교는 상회 의존하면서 독주하는 바가 없었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로서 …
으로 개칭하고, 국학 내에 최충의 9재 학당을 모방하여 7재를 설치하고, 중국 고전을 중심으로 교육하였다.
- 7재는 여택재, 대빙재, 경덕재, 구인재, 복응재, 양정재, 강예재로서 1재부터 6재까지를 유학재라 하고, 제7재를 무학재라 하였다. 고려는 국학을 문무 양학으로 구분하여 교육하였다.
- 인종 5년 지방 교육 기관으로 향학이 설치되어 교육 기관이 완비되었다.
강예제 설치하여 무학에 관한 학습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전통 무예의 체계 확립이란 차원에서 무예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며, 무예가 단순한 신체와 무술 단련의 단계를 초월하여 정치의 순화와 인간의 교화라는 기본적인 측면과 문무 겸전의 인재 양성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고려시대의 과거제도에서 무과가 없어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이 가운데 강예재가 포함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당시 여진과의 관계가 긴박했기 때문에 설치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1133년 문.무 사이의 불화가 초래된다는 이유로 무학재는 폐지되고 말았다.
- 국자감은 1275년 (충렬왕 1)에 국학으로 개칭되었다가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즉위하여 성균감으로 바꾸었고,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다시 즉위하여 성균관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성균관의 명칭은 조선으로 이어졌다.
2. 문,무의 정치적인 흐름
성종이후 문무 양반 관료제가 채택되어 문무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유교를 숭상하는 문예정치의 극치로 문무관을 차별대우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무신에 대한 멸시와 천대가 혹심하였다. 심지어는 군인에게 지급되었던 논밭을 몰수하는 일까지 있었는데, 이를 견디지 못한 무신들이 반란(현종 4년, 1014년)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거란과의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려는 여진족의 침구를 받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피해가 회복됨과 동시에 정치, 경제적 안정으로 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