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나
매슬로우
목 차
왓슨의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원숭이의 성행동을 연구한 심리학 박사
첫아이의 출산과 행동주의의 포기
전쟁과 인본주의 심리학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나
정상인을 연구한 심리학
인간의 욕구에는 질서가 있다
자기 실현한 사람들의 특성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메타 동기
심리학의 제3세력
인간의 삶은 그것이 지닌 가장 고상한 포부를 고려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사람들의 욕구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매슬로우(1908~1970)는 이런 물음에 답을 주는 심리학자이다.
인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1908년 4월 1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매슬로우의 부모는 러시아로부터 이민 온 교육을 받지 못한 유태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는 아들의 행복한 삶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매슬로우의 부모는 칠 남매 중 장남인 매슬로우가 학문적으로 성공할 것을 굳게 믿고 격려했다. 하지만 매슬로우는 어린시절과 청소년 초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심한 고독과 고통을 겪었다.
매슬로우는 어린 시절에 그가 정신이 돌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웃에 유태인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에서 고독하게 살았다. 아마도 그것은 모두가 백인인 학교에 처음 들어가 흑인의 입장과 조금은 유사했을 것이다. 매슬로우는 늘 외로웠고 불행했다. 그는 친구도 없이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자랐다.
사람들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 주려던 매슬로우의 바람은 사실은 그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 …
왓슨의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연구`였다. 이 연구 주제는 매슬로우가 성적인 것과 애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였던 관심의 시초였다. 그는 성, 특히 동성애에 대한 연구가 인간성을 깊이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심리학 조교, 심리학 연구 조교로 재직한 후에 매슬로우는 콜롬비아 대학의 카네기 특별 회원이 되었고 거기서 1937년부터 39년까지 있었다. 콜롬비아에 있는 동안 그는 유명한 학습 이론가인 손다이크의 연구 조교로 일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51년까지 브룩클린 대학에서 부교수로 있었다. 매슬로우는 이 기간, 특히 1930년 말에서 40년 초까지의 뉴욕 시를 심리학계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가 히틀러를 피해서 온 유럽 지성계의 중심 인물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도 바로 뉴욕 시였다.
매슬로우가 그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려고 만난 사람들 중에는 프롬, 아들러, 호니, 베네딕트, 그리고 베르트하이머 등이 있다. 이러한 유명한 학자들과의 비공식적 대화 및 경험들은 그가 후기 인본주의적 견해의 지적 근간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또한 이 기간 중 정신분석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첫아이의 출산과 행동주의의 포기
매슬로우는 처음 심리학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행동주의를 포기했다. 행동주의에 대한 매슬로우의 열정은 첫딸이 태어나면서 사리지기 시작했다.
“나외 첫아이는 행동주의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로서의 나를 변화시켰다. 그 애는 내가 전에 그렇게 몰두했던 행동주의를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게 하여,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머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를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행동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매슬로우는 아이들이 나타낸 복잡하고도 다양한 행동들을 보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매슬로우가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왓슨의 행동주의를 알고 난 뒤부터였다. 그래서 매슬로우는 한때 행동주의가 모든 인간의 수수께끼를 풀어 줄 것으로 믿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