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일제 잔재] 국민학교는 일제의 잔재
서 론
1. ‘국민학교’의 명칭 유래
2. ‘초등학교’까지의 명칭 변천사
3. 초등교육의 변천사
결론
참고자료
참고사이트
`기사자료`
서 론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 한지도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아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학교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교육을 파괴하고 단절시키고 있다. 일제의 식민교육은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엄청난 음모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의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교복제도, 두발제도, 교탁, 애국조회 등이 그것이며, 학교안은 일본의 자취가 아직도 고스란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교육의 잔재가 우리의 전...
본문/내용
[일제 잔재] 국민학교는 일제의 잔재
목 차
서 론
1. ‘국민학교’의 명칭 유래
2. ‘초등학교’까지의 명칭 변천사
3. 초등교육의 변천사
결론
참고자료
참고사이트
`기사자료`
서 론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 한지도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아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학교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교육을 파괴하고 단절시키고 있다. 일제의 식민교육은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엄청난 음모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의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교복제도, 두발제도, 교탁, 애국조회 등이 그것이며, 학교안은 일본의 자취가 아직도 고스란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교육의 잔재가 우리의 전통교육으로 인식되어 가르치는 현실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제의 식민교육의 잔재를 바로 수정하고 개혁하여 우리의 아이들에게 식민지의 잔재를 지워준 것이 있다. 그것은 1996년 3월1일 ‘국민학교’를…
서울의 수하동소학교(水下洞小學校)장동소학교(壯洞小學校)정동소학교(貞洞小學校)재동소학교(齋洞小學校) 등의 설립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소학교의 명칭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제정공포된 `조선교육령`에 따라 보통학교로 변경되었고, 1938년 교육령 개정으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로, 1941년 일왕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의미의 국민학교로 바뀌었다. 이것이 815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오다가 1996년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명칭의 변천은 김영삼 全대통령에 의해 민족정기 회복 차원과 잔재 청산작업으로 여론조사 등을 통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위와 같이 초등학교의 명칭은 일본의 의식화된 개정으로 우리의 전통적 교육을 깨뜨리고, 식민화 시키는 첫걸음을 명칭의 개조에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현대에까지 써오며, 한국 국민의 교육수준을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하여 일제에 복종하게 만들기 위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뒤늦게 생각하여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은 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3. 초등교육의 변천사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는 각종 사립학교의 설립과 흥성이 식민지 정책수행에 극히 장애가 됨을 간파하고 사립학교를 탄압하고,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하여 보통교육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때 설립되거나 사립에서 공립으로 바뀐 학교는 안동(1909)을 비롯하여 예안(1910), 풍남(1919), 일직(1912), 임하(1912), 임동(1912), 도산(1918), 풍남공립보통학교(1919) 등 7개교이다.
일제는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을 통하여 지금까지 4년제의 보통학교를 6년제의 보통학교로 개정함에 따라 안동의 보통학교들도 6년제로 바뀌었다. 또한, 1개면 1개교의 설립원칙에 따라 지금까지 학교가 없었던 군내의 각 면에 학교가 신설되었다. 길안, 풍산, 북후, 와룡, 녹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