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선후기 민중운동, 역사를 뒤흔들다.
목 차
Ⅰ. 서론
1. 조선후기 정치적상황과 삼정의 문란
1) 세도정치와 통치 질서의 와해
2) 수취체제의 문란
3) 농민의식의 성장
Ⅱ. 본론
2. 홍경래의 난
3. 진주민란(壬戌民亂)과 민란의 전국적 확산
1) 진주민란
2) 민란의 전국적 확산
Ⅲ. 결론
4. 민란의 의의
※ 참고문헌
Ⅰ. 서론
1. 조선후기 정치적상황과 삼정의 문란
1) 세도정치와 통치 질서의 와해
숙종 경종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일당전제의 추세와 극심한 정쟁 등 붕당정치의 말기에 두드러졌던 현상은 영 정조의 탕평책과 강력한 왕권 아래에서 일당 억제했었지만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 헌종 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함으로써 왕권이 약화되자 정치적 파탄은 더욱 촉진되어 외척이 정권을 독단하는 이른바 세도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세도정치란 종래의 일당전제마저 청산되고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가문일변도의 정치형태로서, 정권의 사회적…
. 이제 정권은 일개 왕실외척의 사유물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유교적 양반관료정치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당전제가 들어서면서 이미 그 폐단이 문제되었던 과거제는 이에 이르러 더욱 문란해졌다. 당시 신분제의 변동 속에서 과거 응시자에 대한 신분적 제약이 무너져 있었는데, 세도정치 하에서는 급제자의 남발, 뇌물의 성행, 연줄에 의한 급제 등 온갖 비리가 성행하였다. 정부에서는 몰락 양반층이나 지식층들의 불만을 완화하고자 규정을 무시하고 수시로 과거를 시행하였지만 유능하고 뜻있는 학자들은 이를 외면하였다. 과거제의 문란과 함께 관직의 매매도 있었다. 이러한 매관매직을 통해서 관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농이나 상인 수공업자들도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이러한 정치 사회의 난맥상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수령이나 서리들의 부정 탐학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체제적 모순에서 비롯된 부조리가 이러한 일시적인 조치로 쳑결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19세기의 조선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체제를 청상해야 할 단계에 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층은 일시적으로 대처하는 데 급급했을 뿐 어떠한 근본적인 대책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들의 대대적인 항쟁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수취체제의 문란
세도정치는 사회 경제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극심한 부패를 야기하였는데, 그 집약적인 표현이 전정 군정 환곡 등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었다. 이 삼정은 국가재정의 근원이 되는 동시에 농민생활의 절대적인 부담이었는데, 이들 수취제도의 문란은 조선 후기사회를 동요케 하였다.
전정은 토지를 대상으로 각종 세를 징수하는 행정을 말한다. 따라서 전정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토지에 대한 결수의 파악이 정확하고 세의 부과가 공정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숙종 때 양전사업이 전국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