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마야 문명의 몰락
1. 마야 문명의 역사
2. 마야 문명의 몰락
3. 마야의 붕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
4. 견해
5. 참고문
1. 마야 문명의 역사
마야 인들은 원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일부였다가 기원전 3000년경에 과테말라 지역으로 남하하였다. 그 후 기원전 2000년경,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각각 갈라져서 살게 된다. 대규모의 도시 유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형성기 후기(선고전기 후기)부터이며, 여러 중부지역에서 현 벨리즈의 라마나이, 과테말라의 페틴 저지에서 엘 미라도르, 나크베 등의 대도시 유적이 건설되어, 번영하였다. 고전기(기원후 300년 ~ 900년)에는 티칼, 칼라크물 등의 대도시국가의 군주가 `우월한 왕`으로서 패권을 다투었다. `우월한 왕`인 티칼과 칼라크물의 왕은 군소도시국가 왕의 즉위를 후견하거나, 후계자 다툼에 개입하여 세력을 유지하였다. 각 도시에서는 거대한 계단식 제단을 갖춘 피...
본문/내용
마야 문명의 몰락
목 차
1. 마야 문명의 역사
2. 마야 문명의 몰락
3. 마야의 붕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
4. 견해
5. 참고문
1. 마야 문명의 역사
마야 인들은 원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일부였다가 기원전 3000년경에 과테말라 지역으로 남하하였다. 그 후 기원전 2000년경,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각각 갈라져서 살게 된다. 대규모의 도시 유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형성기 후기(선고전기 후기)부터이며, 여러 중부지역에서 현 벨리즈의 라마나이, 과테말라의 페틴 저지에서 엘 미라도르, 나크베 등의 대도시 유적이 건설되어, 번영하였다. 고전기(기원후 300년 ~ 900년)에는 티칼, 칼라크물 등의 대도시국가의 군주가 `우월한 왕`으로서 패권을 다투었다. `우월한 왕`인 티칼과 칼라크물의 왕은 군소도시국가 왕의 즉위를 후견하거나, 후계자 다툼에 개입하여 세력을 유지하였다. 각 도시에서는 거대한 계단식 제단을 갖춘 피라미드 신전이 세워지고, 왕조의 역사를 나타내는 석비가 화려하게 세워졌다.
그러나, 9세기경부터 중부 지역 마야의 여러 도시국가는 연쇄적으로 쇠퇴하였다. 그 원인은 유적의 석비의 모양과 토기로…
이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최근에는 타바스코지방에서 침입한 멕시코 계 주민에게 정복되었다는 설도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페텐 지방의 고전 마야문화가 쇠퇴한 후 유카탄 반도에서는 푸크 양식의 마야문화가 얼마 동안 계속되었으나 10세기가 끝날 무렵 멕시코에서 톨테크계의 군사적 집단이 침입하여 마야족을 정복하고, 치첸이차를 중심으로 유카탄반도를 지배하였다. 이어 13세기에 들어서는 타바스코지방에서 이차족이 침입하여 마야판시(市)를 건설하고 코콤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코콤왕조는 15세기 중반에 제국의 구성원 마야족, 이차족 간의 전쟁으로 도시가 파괴되기에 이르러 내란 때문에 무너지고 유카탄반도는 십여 개의 작은 수장국으로 분열된 채 16세기에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리고 과테말라 고지에도 11세기경 톨테크계 주민이 침입하여 키체족의 우타트란, 카크치켈족의 이심체 등 멕시코 양식의 신전도시가 이 시대에 건설되었다.
정리를 하자면 AD 300년부터 고전기라 불리는 융성한 시대를 맞이하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던 마야는 900년 이전에 종식되고 학자들의 추측만 무성할 뿐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고전 마야문화가 쇠퇴한 후 한 때 발전을 하기도 했지만 10세기 무렵을 기점으로 서서히 쇠퇴하여 15세기 중반의 내란을 거쳐 16세기에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되었다.
3. 마야의 붕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
1)가뭄
마야문명이 멸망한 원인이 밝혀졌다. 20진법을 사용하고, 마야력과 상형문자를 만들며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마야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것은 엄청난 화산폭발도, 전염병도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고대 멕시코 및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해 인디오 문명을 이룬 마야문명은 300~600년경에 번성, 과테말라에서 벨리즈ㆍ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걸쳐 60개의 도시가 건립됐다. 무려 6~7만 명의 마야인들이 살던 이곳은 그러나 1100년경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야문명 발상지인 멕시코 일대 동굴 바닥에서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