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회교육과여가 - 나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농구.
서론.
나에게 여가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나의 제1취미 활동 농구 이다. 내 생애 가장 기쁜 순간중 하나를 같이 했고, 가장 힘든 순간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한창 빠져 있을때는 잘 때도 공을 들고 잤고, 학교를 등하교 할 때에도 드리블을 치면서 가곤했다. 그런 농구를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았다.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건 공부, 일, 대외활동 등 일명 스펙 이였으니까.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사교여를 들으면서 나에게도 여가 생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 나에게 농구가 없는 삶은 무료하며 공허했다. 농구는 내 삶과 같이 가는 동반자이자, 최고의 친구 이다. 잊고 있던 오래된 친구를 다시 찾게 돼서 기쁘고 감사한다.
농구를 시작하다.
농구를 재대로 시작한건 중1 때부터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기던 농구였는데 점심시간, 하교 시간 매일 같이 농구를 했다. 처음엔 키가 작은 나에게 키 큰 녀석들 사이를 휘 저의며 다니는게 참 좋았다. 그러다 내 패스를 받고 기뻐하는 친구를 보는게 좋았졌다. 좀더 지나니 우리팀 모두가 힘을 합쳐 우리보다 잘하는 다른 팀을 이기는게 너무 큰 쾌감이 였다. 중1때 실력은 동네 농구 수준이여서 파울 투성이에 룰도 재대로 없없다. 그러다 학교 행정반에서 일하는 공익근무 형이 농구를 가르쳐 주었다.기본 드리블부터 레이업 슛, 점프슛, 훅 슛, 기본 패스워크, 전략, 픽앤롤 픽앤팝, 수비방법 그렇게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늘었고 2학년이 되자 농구를 가르쳐 주던 형은 소집해제를 하였다. 그 뒤로도 우리는 매일 같이 농구를 했고 실력이 제법 늘었다. 우리들 끼리 실력을 테스트 하기위해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점점 성적이 좋아져서 3학년 말에는 부산대회에서 2등을 하였다.
농구와 이별하다.
농구와 이별 이라기 보다 이 시기에는 모든 것과 소통…
군대. 농구와 생이별
나 군대는 역시 축구가 우선 이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축구도 잘했다. 특기 축구, 취미 농구 랄까 그러다 보니 늘 축구를 하러 불려나갔다. 농구는 말도 못꺼냈고, 주위에 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같이 하자고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일,이등병 까지 축구만 했다. 상병이 되고 나서 혼자서 다닐 수 있게 되고 혼자서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있는 선,후임 들이 생기게 되고, 다같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막사 리모델링 소리가 들리더니 막사 전에 우선 주변 시설부터 재설치, 정리, 한다고 농구장은 물론 주위 족구장, 소연병장 들이 다 못쓰게 되었다. 그리고 전역할 때 까지 부대에서 농구는 한 게임도 뛸 수가 없었다.
2013 다시 시작하다.
사람들이 물어봤다. ‘전역하면 뭐가 제일 하고 싶노’. 나는 대답했다. ‘일단 복학도 하고 알바도 하고싶고, 주식투자도 직접 할꺼고, 여자친구와도 재결합 하고 싶다’. 말은 안했지만 농구가 제일 하고 싶었다. 너무도 당연했고 친구들과 다시 농구를 하는게 기대되고 설렜다.
하지만 전역하고 보니 군대가기전 우리들과 전역후 우리들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각자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들로 아무 생각없이 마냥 농구를 즐길 수 가 없었다. 외국에 공부하러 간 친구, 서울로 상경한 친구, 이제야 군대에 가는 친구, 학교생활, 공부에 각자가 각자만의 이유로 다들 바빴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학교 다니느라, 알바하느라, 주말엔 뭐 공부 할꺼라고 도서관을 다니고 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 성적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허무 했다. 아직 학기가 다 끝난건 아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 삶이 아닌 것 같았다. 사교여를 들으면서 농구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하지만 주위에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예전 같은 열정이 없었다. 마침 그 즈음에 아는 형 에게 연락이 왔다. 전역했냐고, 농구 동호회를 하는데 나오라고 했다. 참 고마웠다. 2년동안 연락한번 안한 못난 동생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