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창작과 글쓰기
문학은 사람의 거울이다
1. 문학은 착각이다.
문학은 무엇일까. 문학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제시한 것이 바로 문학은 ‘나’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를 때도 있지만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삶의 일상에서 언뜻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곧 문학이라는 말에서 출발하면 문학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 되며, 거창한 수식어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닌 내 주위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여러 문학을 통해 비근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삶을 살면서 진한 감동을 주는 문학을 읽고 ‘착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본 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문학은 그 효과나 감동이 완벽하거나 지속적이지는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또 다시 문학작품을 쥐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문학은 착각이며 착각을 하지 않는다면 문학은 그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 끊임없는 착각과 자기중심적 이해가 우리의 오감을 지배하기에 우리는 착각의 자유로움에 빠진다. 그 누구도 이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으며 그 즐거움을 빼앗는 것은 삶을 빼앗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문학은 막강한 후원자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2. 문학은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 못하다. 현실은 불만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고 현실의 중압감을 벗어나기 위해 평화와 행복한 현실을 꿈꾸게 된다.
이상 세계에의 욕망은 인간이 지닌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현실이 힘들수록, 욕망이 이루기 힘들수록, 금지된 것일수록, 더욱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이러한 매달림은 때로는 격렬하…
3. 문학은 답답증 내지는 시원함이다.
4. 문학이란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독자 개인의 삶에 따라 느껴지는 감동의 파도는 다른 모양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문학은 무엇을 주면서도 그 결론을 주지는 않고 나 스스로가 해결하도록 짐을 주는 것이다.
이런 짐은 비록 표면상으로 보았을 때 유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실상 결코 인간을 힘들거나 슬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키의 소설들을 보면 하나 같이 현대인의 소외나 고독들을 담고 있지만 그 소설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짜증나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공감을 형성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또한 작품 속에서 은연중에 그 해소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동은,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대상황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작품자체만으로 느낄 수 있다.
문학은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타르시스의 원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얻게 되는 후련함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즉 내 몸에 쌓인 노폐물과도 같은 것들을 축출해 냄으로써 얻는 후련함일 것이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특히 비극적인 요소를 지닌 작품에서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은 비극이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독자의 반대편에 있는 작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구보다도 작품에 대한 가장 충실한 독자는 작자 그 자신이다. 때문에 작가도 독자가 될 수 있으며, 역시 카타르시스와 같은 영향력의 범주 안에서 정신적인 편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시인이나 작가는 순수한 독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버림으로써 위안을 얻는 존재들인 반면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스스로의 의사들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추억을 가진, 다르게 말하면 많은 상처를 가진 작가, 그래서 치료를 반드시 요하는 작가가 가장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 문학이란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쓰는 행위를 ‘창작한다’라고 한다. 창작이란 뜻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