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선덕 여왕과 모란 고사의 진실
선덕여왕과 관계된 많은 설화 가운데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은 선덕여왕 지기삼사라 하겠고, 그 중에서도 맨 처음 이야기인 모란 고사가 단연 으뜸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야기 안에서 선덕여왕은 진정한 지혜와 낭만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과연 여왕의 어떠한 면모가 이러한 이야기를 산출시킬 수 있었는지, 아니면 혹 다른 연유로 인해 조성된 이야기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설화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가장 신빙할 만한 자료가 되는 한국과 중국의 사서 등을 통해 선덕여왕에 대한 이미지 재점검이 필요하다. 아울러 모란 고사 자체에 대해서도 단순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내용 분석에만 의지 하지 않고 역시 이 여왕의 시대에 이루어진 허다한 설화들과의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선덕여왕 모란 고사에 대한 설화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수준에서 접근 하였다. 실제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삼국사기에서 역시 열전 뿐 아니라 박혁거세나 호동왕자의 경우처럼 본기 기록의 안에도 얼마든지 설화적 개입이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성을 의심케 만드는 모란 고사 안의 내용은 결국 이 개연성을 제시한 논자들에 의해 부분적, 개략적인 언급이 이루어져 오기는 했다. 하지만 역사와 문학, 회화 분야를 아울러 살펴야만 하는 포괄적 관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고, 또한 이야기 생성의 동기 면에서 세밀한 분석이 요구되는 면이 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역사적 사실과 설화적 요소의 양면을 고려해 모란 고사의 진실에 접근해 나가고자 한다.
2. 여왕에 대한 시선
1) 당서에 비친 선덕여왕
정관 9년 사신으로 하여금 천자의 부절을 가지고 선덕여왕을 주국에 명하면서 낙랑군왕 신라왕에 봉하였다고 했다. 연…
2. 삼국사기에 미친 선덕여왕
태종의 심기를 건드렸을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당태종도 동북아시아 공정이라는 정략 면에서 신라를 돕기는 하되, 내심 선덕여왕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으리란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신라가 원병을 청하러 왔을 때 당태종이 사신 앞에 던져주는 세 가지 계책이 있었다고 했다. 그 중 세 번째의 것은 뜻 밖에 놀라움마저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다.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으니 나의 친척 한 사람을 보내어 그대 나라의 임금으로 삼아 나라의 안정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 말을 볼 때 당태종이 선덕여왕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상대로 당태종은 여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일에 대해 못 마땅한 것이었다.
2. 삼국사기에 미친 선덕여왕
이렇게 여왕 통치 체제에 대한 불신은 당나라와 같은 국제적인 관계 안에서만 한정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 불신과 불만의 분위기는 국내적으로도 나타난다. 선덕여왕 재위 시절 상대등 벼슬로 있는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 앞에 정면 도전한 사건이다. 여왕이 능히 선정을 베풀지 못한다는 선언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고 군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김부식도 여왕 본기를 마친 뒤에 논을 통해 여왕의 정치를 비판하구 있다. 그런데 김부식의 이런 폄하는 같은 여왕이었지만 선덕에게만 가해졌다. 바로 다음 여왕이었던 진덕에게는 아무런 비판도 없었다. 오히려 진덕여왕 때에 와서 이전까지 쓰지 않던 중국의 연호를 비로소 따르게 된 일에 대해 제대로 허물을 고친 일이라며 칭찬하였으니, 특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일연의 경우에는 선덕여왕에 대해 힐난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설화 내용들이 자못 여러 개 나타난다. 이상으로 실제의 사록 안에서 여왕의 정치적 능력 및 외부의 평판 등을 통한 여왕의 실체가 그냥 상식의 수준에서 일반 사람들이 여왕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사뭇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선덕여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