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개항시기의 조선과 일본
Ⅰ.서론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야만의 나라, 왜(倭). 이것이 조선시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던 일본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압도하는 일본의 국세를 실감해야 했다. 그리고 고종은 일본의 앞선 문물과 제도를 배우기 위해 신사유람단 파견을 감행했다. 이 같은 역전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한가지 이유는 일본이 조선보다 한 발 앞서 서구 열강에 문호를 개방하고 그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국민국가 수립의 길로 나아간 데서 찾을 수 있다.
서세동점의 노도가 동아시아를 몰아치던 그 시대에 일본은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한 데 비해 한국은 실패함으로써 빚어진 결과는 단순히 문화의 수혜자와 공급자 지위의 역전만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조선은 한때 문화적 열등국가로 경멸해 마지않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역사에 지울 수 없는 40년 가까운 굴욕과 압제의 세월을 지내야 했다. 이렇듯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역사 이면에는 우리의 좌절과 희생도 있지만,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한 그들의 저력 또한 있는 것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100년전의 일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비교해봄으로써 그 차이점과 교훈을 얻고자 한다.
Ⅱ.본론
1. 개항이전의 한국사의 흐름
문화사적 면에서 한국사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1392년 조선의 개국과 1876년 개항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해서 그 전후 시기의 사회성격의 서로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까지는 세계로 향한 문이 열려 있는 이른바 개방의 시대였다면 개항 이전까지의 조선왕조는 닫힌 사회였다. 조선왕조가 세워지기 이전의 우리 문화가 지닌 개방성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고대 동서 세계를 이어준 실크로드…
2.일본의 변화
1)일본형 국민국가
있다. 우리는 경덕왕 때 성씨인명지명관직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꾼 뒤로 개항 무렵까지 중국문화를 배워온 중국 지향형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개항이후에는 문화 수용의 통로가 서구 또는 일본으로 바뀜으로써, 서구 문화를 열렬히 추종하고 모방하는 서구 지향형 혹은 그 아류로서 일본 지향형 문화권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76년의 개항은 한일 양국간 문화의 수혜자와 공급자 위치가 뒤바뀌는 문화교류사상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기점이 되었다. 또 개항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는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물론 개항 이전부터 애국심애향심으로 대표되는 소박한 형태의 폐쇄적 민족주의가 있었지만, 민족 자각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근대 이후 유럽에서 시민적 자유주의 와 궤를 같이 하면서 성숙한 근대적 민족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리하여 서구적 근대국민국가의 건설을 꿈꾸는 개방형 민족주의 또한 그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신사유람단이 파견된 1881년을 전후해서 양대 흐름의 민족주의는 역사의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1880년 원산이 개항되고 한양에 일본 공사관이 설치되는 등 일본이 본격적으로 진출하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적 위정척사파는 당시 조정이 추진하고 있던 개화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집단적으로 펼쳤다. 그 기세에 조정은 신사유람단을 비밀리에 일본에 파견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개항은 위정척사파와 동학 농민군 같은 폐쇄적저항적 민족주의 계열과, 개화파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독립협회 등 개방적외세 의존적 민족주의 계열이 뚜렷하게 자기 세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후 양 계열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상승작용을 하면서 오늘의 한국 민족주의 흐름을 이루어나갔다.
2.일본의 변화
1)일본형 국민국가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국민국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도쿠가와(德川)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유신 주도 세력은 왕정복고를 표방하며 고대의 천황제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