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주도의 역사
` 목 차 `
1. 머리말
2. 제주도의 선사시대
1) 구석기시대
2) 신석기시대
3) 청동기시대
3. 고대국가 탐라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1) 고대국가 탐라시대
2) 고려시대의 제주도
3) 삼별초의 항쟁
4) 조선시대의 제주도
4. 제주도의 민중 항쟁
1) 조선말기 제주도의 민란
(1) 제주도 민란의 배경
(2) 임술년 농민란
(3) 방성칠의 난
(4) 천주교의 난(신축년 항쟁, 이재수의 난)
(5) 제주도 민란의 성격과 의의
2) 세화리 해녀 투쟁
3) 제주도 43민중 항쟁
(1) 43항쟁의 배경
(2) 43항쟁의 전개
(3) 43항쟁의 성격과 의의
5. 맺음말
1. 머리말
제주도를 어떤 이는 눈물과 한숨의 섬이라 하고 어떤 이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섬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까지 낳게 한 이 섬은 옛날에는 문명 생활과는 동떨어진, 말(馬)이나 자라기에 알맞은 척박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제주도는 관광 사업으로 인해 많은 발전을 해 오고 있다. 지금의 제주도는 그 동안 많…
명은 1986년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바위그늘 유적의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이 이 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해서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무문토기시대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사람이 살아왔던 것임을 층위적으로 구명할 수 있었다.
북촌리 바위그늘 유적의 최하층은 신석기시대 생활면으로 출토된 토기는 압인점열무늬토기 형식 이외에도 남해안 지방에서 출토된 바 있는 이중구연토기와 긴 주걱 모양의 골각기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최하층의 방사성 탄소연대가 B.P. 2920年 정도로 나와 이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10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외에도 제주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고산리 유적, 월령리 한들굴 유적 등 많이 있다. 제주도에서 우리나라 서해안 지방이나 남해안 지방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제주도 신석기시대 문화가 서해안 보다는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신석기시대 문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청동기 시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라 하면 비파형동검(요령식동검), 조문경을 표지유물로 하며 초기철기시대는 세형동검, 세문경 등의 청동유물과 함께 철기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청동유물이 발견된 바 없고,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토기형식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공열토기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초기철기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공열토기가 계속 성행하는 것으로 보이며 점토띠토기는 극히 적은 양이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제주도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묶어 한 시기로 보아야 하며 편의상 그 시대를 공열토기의 무문토기시대로 보고 있다.
제주도의 공열토기 문화 전개양상을 파악하는데 그 기준틀을 제공한 유적은 대정읍 상모리 유적이다.
3. 고대국가 탐라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1) 고대국가 탐라시대
제주도에 언제 고대국가가 들어섰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문헌기록이 없다. `삼국사기`에 ‘탐라’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