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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의유산`
냉전의 종식
냉전체제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방진영, 소련과 동방진영 간의 극심했던, 하지만 얼음장 같았던 극도의 긴장 속 대립상태를 말한다. 냉전은 일차적으로는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이 상호 경쟁적인 사회체제론을 바탕으로 전개한 대립’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냉전 시대라 함은 194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에 두 진영 간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군사적인 영역을 포함한 정치, 경제, 외교,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극심한 대립이 일어났었다. 2차 세계대전은 종전의 1차 세계대전보다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했던 전쟁이었는데, 나치 타도라는 전쟁 최대의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미국과 소련 두 국가가 서로 멀어지며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동서간의 냉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양 국의 억제와 봉쇄에 입각한 국가 정책 덕분에, 두 나라 간 대규모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냉전이라는 용어는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서방과 동방진영의 대립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글은 냉전의 종식에 관한 내용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 냉전이 시작된 전반적인 배경과 과정 등을 간단히 알아봄으로써 냉전의 종식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냉전에 관한 것은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이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냉전 시대는 미국과 소련뿐만 아니라 서방과 동방, 제3세계의…
장을 하고 있는 소수 공산세력과 이를 지원해 주며, 정복을 획책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 저항을 하고 있는 여러 자유 국가들을 지원해 주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는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 정책과 ‘마샬플랜‘ 이라는 경제적 지원, 팽창계획은 공식으로 유럽의 재건과 미국과 서구 결속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한다. 즉시 소련은 소련을 중심으로 동유럽 9개국과 코민포름을 형성하여 공산주의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미국의 마샬플랜에 대항하고, 런던 연합군 외상회의 이후에는 결국 유럽이 동서로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이로써 ‘양 진영론’은 공식화 되고, 소련에 의한 베를린 봉쇄 사건과 한국 전쟁은 동서의 대립을 결정적으로 촉진하는 사건이 되었다. 소련의 베를린 봉쇄 때 서방 입장에서는 베를린을 포기하는 것은 곧 냉전의 패배로 여겨졌고, 베를린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사가 있음을 보임으로써 이곳은 상징적인 곳이 됨과 동시에 냉전이 맺은 하나의 결과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베를린 봉쇄가 해제 된 뒤에 한국에서 베를린과 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서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는 양측에 아무 득도 없이 엄청난 희생자만 남긴 채 끝이 난다.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이해관계에 의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북한은 스탈린주의로, 소련의 지원 아래 이란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정부를 선포하고, 그리스는 내전을 겪었으며, 중국에선 마오쩌둥의 혁명이 성공했고 베트남에선 호치민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이에 미국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묵인할 경우 자유를 상실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들에 대한 거부를 공식화하는 한편, 공산주의 국가 내의 반체제 세력을 지원하고 체제 전북을 조장하는 등 소련의 팽창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양측의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국가 간의 대립만 심화시킬 뿐이었다. 이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등장, 이에 대항하기 위한 소련의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창설, 이것은 그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상대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