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서론
한반도가 강대국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북으로 분열되고 6.25를 거치면서 불과 분단 6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분단은 내면화 되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휴전 후에도 끊임없는 도발과 교전 속에서도 남북이 교류, 평화, 통일 논의는 계속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3가지가 1972년 7월 4일 남북 공동성명과 1991년 12월 13일 남북 기본합의서, 그리고 역사적인 2000년 6월 15일 남북 공동선언이 있다.
남북 관계의 변화는 냉탕과 온탕을 아주 빠르게 들락날락 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반공을 최우선 이념으로 삼던 군사정권시절에서도 남북은 서로 협상하고 협약을 채결했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는 남북이 지금까지 협상에 있어 가장 통일에 근접한 합의를 이루어 내고 교류를 하는 등 남북 평화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불과 5년 만에 거의 모든 교류와 협상이 끊기는 등 다시 남북관계는 냉탕으로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늘의 적이 내일 친구가 되고 다시 모레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이제는 통일의 의지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점점 사망하고 지금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내면화된 분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 협상하고 교류하여 통일을 논의한 3가지의 합의를 교육받고 이해하는 것이 남북통일을 이어나가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러므로 아래에서부터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의와 배경, 내용과 발전과정, 이로 인한 변화를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
본론
◎ 74 남북 공동 성명
정의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남북 간의 정치적 대화통로 마련과 한반도 평화정착정책 추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발표한 남북 간의 첫 합의 문건.
배경
1967년 월남전의 격화와 1968년 …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아무 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다 말했다. 이런 북한의 남북회담 제스처에 남한 정부가 부응함으로써 1971년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되었다. 72년 5월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한의 제2부수상 박성철이 평양과 서울을 비밀리에 서로 방문,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비롯하여 상호중상비방 및 무력도발의 중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의 실현 등에 합의하고,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 남북 간의 제반문제를 개선해결하고 합의된 통일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서울 측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 측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할 것에 합의했다.
이후 서울과 평양 간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협의를 위한 여러 회담들이 진행되면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7.4남북공동성명 내용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자주의 원칙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평화의 원칙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민족 대단결 원칙
이후 진행과정
남북이 최초의 협약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수립했지만 이는 남북 간 평화 통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자신들의 체제 강화에 이용하였다.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성명을 구실삼아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발표하여 헌법을 이용한 독재를 시작하였고 북한에서는 12월에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여 주체사상을 확립하고 김일성강화 헌법을 제정하였다.
변화와 의의
6.25 이후 대화가 끊겼던 남북이 통일을 위한 최초의 합의로서 의의를 가진다. 또 자주의 원칙, 평화의 원칙,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통해 기존의 외세 의존적이고 대결지향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