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보자.”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역사학은 서구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다.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역사학은 승리자 중심으로 역사의 서술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으로서,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역사학이 체제를 미화시키는 일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르게 읽기’를 통해 ‘작은 것을 통해 읽기’ 라는 새로운 문화사의 또 다른 접근 방식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것이 바로 신문화사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해왔던 큰 사람들의 얘기에서 벗어나, 박해받고 소외되었던 작은 사람들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신문화사가 걸어온 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새로운 문화사가 등장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넘어서려고 했던 사회사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사가 극복했던 정치사에 깔려 있는 전제조건을 살펴봐야 한다. 19세기에 역사학은 랑케에 의해 과학성을 얻게 되었다. 랑케의 사학은 19세기 후반에 막강한 파급 효과를 지니고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각 국가의 정치와 외교의 역사가 가장 중요한 연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오래도록 지속됐다. 사회사는 영웅 중심적이고, 지배자 중심적인 정치사의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사가 ‘위로부터의 역사’였다면 사회사는 ‘밑으로부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많은 의미의 층위를 담고 있는 두꺼운 묘사이다. 또한 더 많이 변할수록 더 똑같은 것이 라는 프랑스 속담을 통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당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턴의 ‘고양이는 죽어야 했다’를 통해 당시 핍박받고 살던 고양이들이 인쇄소 견습공들에 의해 몰살당해야 했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다르게 읽기는 ‘고양이는 죽어야 했다’를 고양이의 입장에 서서 서술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을 바꿀 경우 현상에 대한 설명이 정반대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 의존하여 역사를 서술하게 되면, 소외되고 박탈되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가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어법과 표현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렵다. 여성사 또한 다르게 읽기를 적용시킨 대표적인 분야이다. 세 번째, ‘작은 것을 통해 읽기’는 아무리 변칙적인 것이라도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말하면 해결되는 도피가 언제라도 가능하다. 즉, 이 같은 방법은 역사적 사실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을 상당 부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이탈리아의 역사가는 ‘치즈와 벌레’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이단에 가까운 대답을 제시함으로써, 지배문화와 민중문화가 각기 자율성을 지니고 존재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설명한다. 소외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쓴 글을 거의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구전되어 전래되어 미시가 들은 사료를 찾기 위해 애쓴다. 즉 역사학은 겉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통하여 그 뒤에 놓인 역사적 실재를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깨뜨리기’는 담론을 소유한 사람들이 타자들을 배제하는 기능에 대해 말한다. 역사 서술에 허구적, 상상적 차원이 담겨 있다는 것은 사건이 실지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기술하는 모든 시도는 다양한 형식의 다양한 형식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신문화사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읽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