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제 2차 국공합작의 성립과정과 그 의의
`목차`
Ⅰ 머리말
Ⅱ 일본의 만주북중국 장악 기도
1. 일본군의 중국침략과 국민당 정부의 대응
2. 항일대중운동의 전개
Ⅲ 중국공산당의 소비에트혁명론에서 항일통일 전선론으로의 전환
Ⅳ 국민당 정부의 항전건국체제로의 전환
Ⅴ 서안사변과 제 2차 국공합작의 성립
Ⅵ 맺음말
Ⅰ 머리말
5.4운동의 소산이라 할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은 반제 반군벌이라는 과제를 서로 힘을 모아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를 제 1차 국공합작이라 한다. 그러나 북벌을 통해 중국을 분열시켜 온 군벌들을 억눌러 중국 전역을 통일함과 동시에 제국주의열강을 견제함으로써 국민혁명의 과제를 완수할 날이 눈앞에 다가서면서 국민혁명을 추진해 온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장개석은 국민당 내에 좌파세력과 공산당을 불법세력화하면서 탄압하고 독자적으로 남경에 국민정부를 세웠다. 그에...
본문/내용
제 2차 국공합작의 성립과정과 그 의의
`목차`
Ⅰ 머리말
Ⅱ 일본의 만주북중국 장악 기도
1. 일본군의 중국침략과 국민당 정부의 대응
2. 항일대중운동의 전개
Ⅲ 중국공산당의 소비에트혁명론에서 항일통일 전선론으로의 전환
Ⅳ 국민당 정부의 항전건국체제로의 전환
Ⅴ 서안사변과 제 2차 국공합작의 성립
Ⅵ 맺음말
Ⅰ 머리말
5.4운동의 소산이라 할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은 반제 반군벌이라는 과제를 서로 힘을 모아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를 제 1차 국공합작이라 한다. 그러나 북벌을 통해 중국을 분열시켜 온 군벌들을 억눌러 중국 전역을 통일함과 동시에 제국주의열강을 견제함으로써 국민혁명의 과제를 완수할 날이 눈앞에 다가서면서 국민혁명을 추진해 온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장개석은 국민당 내에 좌파세력과 공산당을 불법세력화하면서 탄압하고 독자적으로 남경에 국민정부를 세웠다. 그에 의해 북벌이 완료된 1928년 이래 남경국민정부는 1949년까지 중국을 통치한 중앙정부가 되었고, 분열에 빠진 전국을 통일하여 국민혁명의 주요 과제가 달성된 면이 있다고 하나 그만큼 치른…
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장개석이 부저항 정책을 택한 이유는 그의 정치권력의 취약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남경국민정부는 1928년 이래 표면적으로는 통일된 중국의 중앙정부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강소 절강 안휘 복건 장강 하류지역에 한정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지방에는 동북의 장학량 산서의 염석산 서북군벌인 풍옥상 산동의 진제당 광서의 이종인 백숭희 등 명목상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 밑에 들어왔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지방의 반 자주적인 잔여군벌들로서 때로는 중앙정부에 대립하며 안정을 위협하였고 거기에 국민당내의 혁명원로들인 호한민 왕정위 손과 등이 거느린 파벌들은 장개석 정권의 지도력을 잠식할 수 있는 경쟁자였다. 실제로 만주사변이 발발하기 직전에 왕정위와 손과등 반장개석파는 광동에 별도의 국민정부인 광동정부를 수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위협적인 세력은 중국공산당이 확대시키고 있던 소비에트지구의 존재였다. 이렇게 분열된 중국을 책임지는 장개석의 중앙정부는 일본군의 침략에 즉각적인 무력 대응을 하기보다는 부저항 정책을 취하며 외교적 수단으로 당면의 만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했고 국제연맹에 제소하여 국제적 여론이 일본을 적당히 제재해 주길 바라며 국제연맹 결의를 통과시켜 일본군의 철수를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에 아랑곳없이 진출을 확대했고, 장개석의 외교적 노력이 무산되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12월 15일 하야하여 일체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에 임삼으로 하여금 권한을 대행케 하다가 광동정부를 따로 차렸던 손과 등에게 정권을 잡게 하였으나 손과정권은 일본과의 직접 교섭에서 대일절교까지 고려할 정도로 강경책을 폈으나 장의 비협조와 절강재벌의 원조거부로 군사권도 재정권도 없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광동 측의 무기력이 드러나게 되자 1932년 1월 28일 장개석은 군사위원장으로 권력에 복귀하며 경쟁자이자 친일적인 왕정위를 행정위원장으로 끌어들여 합작정권을 수립하였다. 이후 국민 정부는 만주사변 권력에 도전하던 불안요소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