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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아프리카 외교
Ⅰ. 서론
자원외교의 시험대, 지금 세계는 검은 대륙에 집중하고 있다. 유가에 이어 원자재 가격까지 연일 상승하면서 자원부국으로 세계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자원이 패권이 되는 시대, 그 동안 세계 경제에서 그 존재가 거의 미미했던 미개척지 아프리카에 각국이 몰리는 현 시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 아프리카 외교정책을 했다고 평가 받는 국가는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은 아프리카와 1140억 달러를 거래해 미국을 제치고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 파트너 자리를 차지했다. 아프리카를 두고 벌인 강대국 사이의 외교전쟁에서 승리한 중국이 어떠한 방법으로 대 아프리카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대 아프리카 외교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보도록 하겠다.
제 1장에서는 중국과 아프리카의 외교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류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진행된 사건으로 인식하지만, 1950년대 중국의 외교역사에서 이미 우리는 중국과 교류한 아프리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와의 외교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중국이 과거에 어떻게 하였길래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강대국 사이의 ‘자원외교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그 동안 어떠한 외교정책을 펼쳐 아프리카와의 외교전쟁에서 승리하였는지에 대해 중국의 대 아프리카 역사를 연구해볼 것이다.
2000년대 중국과 아프리카 간의 경제협력이 심화되면서 교역규모도 이에 비례하여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중국 전체 교역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4%대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교역증가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2000년 100억 달러에 불과…
Ⅱ. 중국과 아프리카의 외교의 역사
공식적인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은 자신의 나라가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아프리카 역시 195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민의회 회장 윌터 시슬루가 국제청년축전에 참가한 후 중국을 한차례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중국과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둥회의 이전까지 중국은 아프리카와 소규모 경제 무역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수출품은 대부분 차였고, 수출 지역마저 이집트와 머그레브 지역에 한정되어있었다.
1955년 4월 18일 반둥회의에서 중국은 아프리카와 정치외교적으로 공식적인 첫 접촉을 가졌고, 3개월이 흐른 후 이집트와 공식적인 첫 경제접촉을 가졌다. 1955년 7월 중국은 이집트를 돕기 위해 2,450만 달러가량의 면화를 수입했다. 당시 세계 3위의 면화 생산 대국이었던 중국이 이집트의 면화를 수출하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있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면화 수입 결정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55년 8월 22일 이집트 무역 대표단은 중국의 베이징을 방문했고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와 최초로 최혜국대우의 무역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와의 무역협정 체결은 같은 해 시리아, 레바논과의 최혜국대우의 무역협정을 맺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한 중국은 자국의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60,0000톤의 강철을 세계 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20%나 저렴하게 이집트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8년 후반기부터 중국과 아시아아프리카의 사이에 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 사이의 균열이 발생하였는데, 인도의 네루 수상이 티벳 라마교 달라이 라마를 지원하면서 1961년 9월 열린 비동맹제국회의에서 네루는 중국을 완전히 노골적으로 소외시켰다. 이와 관련해서 대규모의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두 나라 사이에 깊은 적대의 홈을 파놓게 되었다. 또한 수단, 파키스탄,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군사 쿠데타와 무장폭동을 배후에서 책동함으로서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