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목 차`
-들어가며
-아담스미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국부론의 요약
-국부론에 나타나는 이론적 모순
-마무리하며
-들어가며
“어떠한 형태의 통제나 제약 없이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게 되면 비록 그가 사회적 이익을 전혀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의 행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사회적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 이 문구는 경제학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고교 교과 과정이든지 어디에서든 한번쯤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자유방임주의의 선구자이자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의 저서인 국부론을 통한 그의 학설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국부론은 리카도의 `경제학 및 과세의 제원리`,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과 더불어 경제학의 4대 고전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1766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집필된 국부론은 원제 ‘제 국민의 부의 성질 및 원인에 관한 연구’ 로 총 5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의 두 편(1편`노동의 생산제력의 개선의 제원인과 그 생산물이 국민의 여러 계급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 질서에 대하여`, 2편`자본의 성질, 축적 및 용도에 대하여`)이 국부론을 인정받게 하였고 4편과 5편의 내용이 번역본으로 거의 한권을 차지 할 만큼의 많은 내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부론은 그 원제에서 아담 스미스가 조명하려고 하는 부의 원인에 대한 고찰이 잘 나타나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인의 경제행위에 따른 자연적 질서의 확립이라는 사상 하에 국부론을 저술하였으며 경제 분야의 각 배역들을 지배하고 이끄는 법칙들을 설명하고 이러한 행동의 법칙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
-아담 스미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학했으며 거기서 그리스문학과 수학도덕철학 등을 공부하였다.(40년 봄까지 다녔기 때문에 학위는 받지 못했다.) 그곳에서 중상주의자였던 허치슨으로부터 사회과학 일반에 관한 도덕철학을 수학하였다. 1740년 7월에 스넬 장학금으로 옥스퍼드 대학(발리올컬리지)으로 옮기게 되는데 옥스퍼드가 있는 잉글랜드지역은 스코틀랜드지역보다 농업 및 기타 경제발전에서 앞서가는 곳이었다.
1746년 8월 옥스퍼드를 중도 퇴학한 스미스는 다시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게 되고 귀향이후 모친과 지내면서 면학에 전념하게 된다. 이때에 `천문학사`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50년 겨울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철학협회주최의 공개강의를 실시하여 호평을 받았다. 다음해인 51년에 흄과 알게 되었으며 그의 인간본성론에 영향을 받는다.
교수로서의 스미스는 1751년 1월에 모교인 글래스고 대학의 논리학 교수로 임명되고 스승인 허치슨교수의 병고로 도덕철학의 강의도 맡아하게 된다. 1755년 친구와 함께 `에든버러평론`지를 창간하였으며, 1759년 4월에 `도덕 감정론`을 발행하여 대 호평을 받게 된다. 62년까지 글래스고대학 부총장을 지냈으며 63년에 `국부론`초고를 쓴 것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25세에 취임한 이래 아담 스미스의 강의는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제1부는 자연철학, 제2부는 도덕감정론, 제3부는 정의론, 제4부는 편의론으로 구성되어졌다. 이를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제1부는 신학, 제2부는 윤리학, 제3부는 법학 그리고 제4부는 경제학으로 구성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의 전환기는 버클루 공작의 가정교사를 승낙함으로서 시작되는데 64년에 글래스고 대학에 사표를 제출한 후에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다. 1766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면서 중농학파 학자들과 볼테르, 케네, 티고르등과 같은 사상계의 지도자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1년 후 5월 고향 커고디로 돌아온 스미스는 `국부론`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고 그 후 10년 동안 건강이 쇠약해지는 가운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