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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
금호아시아나 연혁
1946~1959 - 창업
금호그룹은 故박인천 회장이 1946년 광주택시를 설립, 운수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년 후 1948년 광주여객으로 확장하면서 본격적인 기업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광주여객은 노선을 확대하고, 여타 군소업체들을 흡수하면서 전국최고의 버스회사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1970년에는 광주고속으로 상호변경을 하였다. 여객운수사업에서 시작한 금호그룹은 모기업인 광주고속을 중심으로 수직적 통합 전략을 추구하였다
1950~1979 - 성장기반 구축
광주고속의 타이어 자체조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1960년 금호타이어가 설립 되었고, 1971년에는 금호석유화학도 설립하였습니다. 설립 이후, 그룹체제로 더 큰 하나가 된 금호아시아나는 고속과 타이어 성장을 발판 삼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금융, 건설, 철강, 전기업 등에 잇따라 진출, 1977년에는 12개 사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습니다.
1980~1989 - 체제개편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어발식’그룹 확장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게 되었다. 수출일변도에 다른 성장위주정책의 문제점, 12차 석유파동과 국제고금리추세 등으로 인한 석유화학 관련 산업의 불황, 타이어 수요 감소로 인한 삼양타이어의 경영부진과 철강부문의 금호산업 역시 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금호그룹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후 몇 년간 금호그룹은 과거의 잘못된 다각화전략을 수정하고, 부실한 비 관련부문기업들을 대폭 정리하였다. 1981~1985년의 기간 동안, 과거에 무모하게 비관련사업부문으로 다각화하였던 사업을 모두 매각하여 자신의 주력사업인 운수사업과 타이어, 고무석유화학에 집…
1990~2000 - 세계화
2001~ 2005 - 도약기반구축
2006~ 비상
전체 개요 (기업의 어제와 오늘)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운송과 화학ㆍ타이어 등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면모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박삼구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취임 초 적극적인 M&A를 통한 신규 사업 진출을 천명했던 박 회장은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인 항공, 타이어의 내실화를 토대로 물류와 관광레저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며 그룹을 혁신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호아시아나는 2004년 한국복합물류(KIFT)를 인수하며 물류 부문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그룹 보유 화물물량과 물류 인프라스트럭처를 한국복합물류로 통합해 물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결과, 677억원 불과했던 매출을 2007년에는 3000억원(추정치)까지 끌어올리며 종합물류회사를 향한 기반을 다지게 됐다.
2006년에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 중 하나인 건설 부문 국내 1위를 확고히 하게 됐다. 재계 순위도 11위에서 7위(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2007년 4월 공정위 발표 기준)로 끌어올렸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7월에는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종합시공능력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해외 리조트를 인수하며 관광레저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현재 충무 화순 설악 제주에 위치한 4개 리조트, 아산 스파비스, 금호 패밀리랜드(광주 소재), 그리고 1993년 개장한 아시아나컨트리클럽(용인 소재)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레저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골프장을 인수하고 있다.
2006년 12월에는 중국 범화CC(현 아시아나 컨트리클럽 웨이하이)를 인수했고, 2007년 2월에는 UMDA에서 사이판 `라우라우베이 골프리조트`를 인수한 바 있다. 그룹은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렌터카 등 계열사와 시너지를 통해 레저 사업을 한층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대한통운 인수하였다. 금호아시아나는 국내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이 아시아나항공 등 그룹 내 계열사들과 다양하고 광범위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이제 안정과 내실을 기하는 사업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