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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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복
남자의 저고리는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저고리보다 길어 허리나 그 밑에까지 내려왔으며 여성들의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가슴 앞쪽의 끈으로 묶었습니다.
바지는 최초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기 편하도록 통이 좁았습니다만, 점점 농경사회화 되면서 밭에서 쪼그려 앉기에 편하도록 다리통이 넓어졌습니다. 헐렁한 자루 같은 바지가 통이 좁은 바지보다 마루바닥에 앉기에도 편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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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복
도포는 조선시대(1392-1910) 중기부터 선비들이 입었던 외투입니다만, 일반 백성들도 제사나 특별한 행사 때 입었습니다. 다른 의복 위에 걸쳐 입는 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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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복
학창의고려시대(918-1392)와 조선시대(1392-1910) 선비들의 옷으로 숭고함과 고아함을 상징하는 스타일입니다.
심의선비들이 한가한 시간에 입던 옷으로 옷을 보면서 느꼈던 소감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심(深)은 깊이 사색한다는 의미입니다. 학창의와 마찬가지로 심의는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뜻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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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복
털마고자마고자는 원래 만주인들의 의복으로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대원군이 만주에 은둔 후 이 옷을 입고 돌아오고 나서부터 일반화되었습니다. 겨울 보온용으로 애용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사치스러운 옷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직녕포이 모포같은 옷은 고려시대(918-1392)에 처음 하층 관료들이 주로 입었으며 조선시대(1392-1910) 때는 일반 백성들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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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복
치마는 펼치면 사각형이고 입으면 통 모양이 되며 윗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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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린이 의복
4 궁복
퍼져나갔는데 복장은 약간씩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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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궁복
활옷고려시대(918-1392)와 조선시대(1392-1910)의 공주들이 예복으로 입었던 옷입니다. 장수, 행운, 부귀 등을 상징하는 10가지의 동식물 형상을 진홍색 실로 수놓았습니다. 귀족들은 활옷을 혼례식에서 신부 외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활옷은 워낙 비싸 일반인들은 활옷 대신 녹원삼을 입었습니다.
앞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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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궁복
면복과 적의면복은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는 것인데, 면복은 군왕의 표식으로 삼았던 것이며, 왕이 종묘사직 등에 제사를 지내고, 정조, 동지, 조회, 수책, 납비 등에 착용하는 제복 및 대례복입니다. 적의는 왕비의 최고 예복으로 왕과 함께 종묘를 참배하거나 외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는 등 특별히 큰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입었습니다. 적의는 이 옷에 꿩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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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궁복
철릭철릭은 조선시대(1392-1910) 초기부터 왕 이하 백관들의 관복의 밑받침 옷이었습니다.
황포조선시대 후기 왕이 입었던 평상복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이 거세어 한국의 왕들은 황색 의상을 입지 못했고 대신 홍룡포를 입었습니다만, 1897년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고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황포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앵삼앵삼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과거 급제시와 관례 때의 예복으로 연두색 겉감에 황색 안을 넣고 깃, 도련, 소매 끝에 검은 선을 두른 단령포로 사모, 각대, 목화와 함께 착용하였습니다. 과거 급제 시에는 왕이 내려준 어사화를 꽂고 삼일휴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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