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자전거 문화:
[自車文化]
목차
Ⅰ.서론
자전거 문화를 선정한 이유
Ⅱ.내용
1.韓日의 자전거 역사
①.한국 자전거의 역사
②.일본 자전거의 역사
2.韓國과日本의 자전거 정책비교
①안전수칙및규정
②교통표지판
③주차관리시스템
3.자전거의 안전을 위한 개선점
Ⅲ.단어정리
Ⅳ.느낀점
ⅴ.출처
Ⅰ.서론
자전거 문화를 선정한 이유
자전거로 학교나 출퇴근 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현실로써는 꿈만 같은 일일 것이다.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이용하기에는 불편함도 있고 위험요소가 많다. 해외에서는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이 27%까지 이르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1.2%의 수준밖에 미치지 못한다. 자전거 보급률 세계2위의 일본을 보더라도 자전거 보유율이 1.7명당 1대에 비해 우리나라는 7명당 1대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자전거 보유율에 걸맞게 일본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설치되어있는 기차, 전철역이 1만여 곳으로 모두 3백7십만 여대를 수용할 수 있다. 그에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여건이 절실히 필요하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자전거로 위험부담 없이 마음껏 사용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 정부시책등과 맞물려져 상당기간 호황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엄복동 선수(왼쪽) 100년전 우리나라의 자전거(오른쪽)
두번째 자전거 가설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 무관의 최초 도입설
자전거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사람에 대해서는 선교사요 의사이면서 미국 공사를 역임한 초기 미국인 알렌도 자기 나름의 견문을 써 남겼다. 1884년 미국장교의 한사람이 제물포에 정박 중인 배에서 내려 딱딱한 바퀴에 안장이 높은 구식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했다. 혼잡한 서울거리를 누빌 때 알렌은 말을 타고 이 장교는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이를 처음 본 한국사람들이 몰려들어 입을 벌리고 닫을 줄을 몰랐다 했다.
1884년에 미국군함을 타고 제물포에 와서 자전거 타고 서울까지 가 알렌과 동반하고 다녔던 미국장교란 어떤 사람일까. 이름을 밝히지 않아 추정할 수밖에 없다. 1884년에 제물포에 기항한 유일한 미국군함은 트렌튼호로, 한미수교조약 후 미국에 수교사절로 특파됐던 민영익(閔泳翊), 서광범(徐光範), 변수(邊燧) 등을 태우고 왔는데 미국 해군장교 포크가 서울까지 수행했었다.
함장인 피치안과 그 참모들도 서울까지 왔다했지만 말 탄 알렌과 더불어 자전거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는 미국장교라면 함장이나 참모라기보다 당시 미국공사관 무관이던 포크였을 확률이 높다. 왜냐면 당시 알렌은 미국공사관 부속 의관(醫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들여온 사람으로 미국공사관 무관을 역임했던 해군장교 포크라는 설도 성립이 된다.
종전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채 윤치호(尹致昊)의 도입설이 무게를 차지해왔는데 윤치호가 한국사람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 선구자이기 때문에 도입설과 연계됐을 확률이 높다. 윤치호가 외국에 있다가 들어온 것은 1883년 푸트 미국공사의 통역관으로 귀국한 것과 1895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상해를 거쳐 들어온 두 번이다.
만약 윤치호가 1895년에 들여왔다면 이미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많이 보급된 후의 일이요 1883년에 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