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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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쉴러
미학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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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 (1724~1804)
Friedrich Schiller
(1759-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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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의 칸트 수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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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Beobachtungen uber das Gefuhl des Schonen und Erhabenen≪(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관찰) 발표.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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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 봄에 완성한 『도적들』을 자비 출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발표됨(57세). - 반응은 대체로 냉랭했다.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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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형이상학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u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onnen) 발표-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냉랭한 반응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칸트가 그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저작.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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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 ≫Die Rauber≪ (도둑들)
1783: ≫Die Verschworung des Fiesco zu Genua≪ (피에스코의 반란)
1784: ≫Kabale und Liebe≪ (간계와 사랑)≫Was kann eine gut stehende Schaubuhne eigentlich wirken≪(좋은 상설극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1787: ≫Don Carlos≪ (돈 카를로스)
칸트 접촉 이전의 쉴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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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저작 발표: -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urgerlicher Abs…
해 볼 작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1791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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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르너는 이 편지에 답하면서 칸트를 비판한다. 칸트가 미의 주관에 대한 작용만 거론할 뿐, 대상 자체의 객관적 성질에 대해서는 고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쾨르너는 객관적 성질에 대한 `현자의 돌`이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791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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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는 괴셴에게 빌란트의 `Idris`와 홈의 `Elemente der Kritik`과 함께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보내주기를 부탁한다.
1791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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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작가 옌스 바게젠의 청원에 따라 왕자 크리스티안 폰 아우구스텐부르크는 쉴러에게 3년 간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함.
쉴러는 이 재정적 자유를 철학 공부에 바치기로 함.
17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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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는 쾨르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지금 비극의 즐거움에 대한 미학적 논문을 쓰고 있다 [...] 이 논문에서는 칸트의 영향이 많이 발견될 것이다`라고 쓴다. 이 논문은 아마도 `비극예술론`일 것이다.
1791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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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는 크루지우스에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179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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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르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쉴러는 `칸트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3년이 걸리더라도 칸트 철학을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천명한다. 그러나 로크와 흄, 라이프니츠의 저작들도 공부하겠다고 말한다.
179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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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젠에게) 칸트 철학을 공부 중이라고 밝힘.
179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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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는 쾨르너에게 현재 `미적 서한`을 집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다시 읽고 있으며, 바움가르텐도 읽어볼 생각이며 줄처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1792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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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는 쾨르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