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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실주의란 혈연, 지연, 학연 또는 정경유착, 기업연고주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집단주의적 특징을 보이는 경제활동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상이한 체제, 상이한 네트워킹
-식민주의의 유산
한국 :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전제조건이 심각히 결여되어 있었고, 한국의 지배정당들은 처음에는 사회에 대한 제한적인 형태의 정치적 경쟁을 허용하였다가, 다음에는 갈수록 전투적인 반대세력과 교착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정치적 억압시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한국의 체제구조는 본질적으로 얕고 약하며 불안한 지배연합체제였다.
대만 : 대만으로 이전한 정당국가는 본토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정당국가는 위로부터 전면적으로 개혁한다면 재활의 가능성이 있는 어엿한 조직이었다. 또한 한국의 정치엘리트들과는 달리 장개석의 국민당은 한 번도 자신을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표방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의 체제특성과 차이는 정치적 계성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데 한국은 계승이 문제가 될 때마다 지도자의 세대교체보다는 ‘쿠데타’를 선택하였고 대만의 권력 승계는 장경국이 공식적으로 총통이 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태국 : 태국은 집정관적 정치로 시달리고 있었다. 군부는 군대파벌로 쪼개져 있었고, 그들은 쿠데타와 반쿠데타를 반복하였다. 태국 군부는 한국과 대만처럼 권력블록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파편화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대만의 군부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태국은 잦은 쿠데타와 내각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지…
-자본의 역할
태국 : 태국의 통화정책은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적인’ 정책
2. 조정의 정치
부는 태국의 경제적 하부구조를 장악하였고 이들은 정치적 후원-수혜주의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태국의 안정적인 지대수입원이 되었고 경제적 특권을 누렸지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전략은 실패하였다. 사릿의 등장은 태국 경제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중앙은행을 비롯한 전략적 국가기관에서의 민간기술관료들의 후원-수혜주의를 정당화해 주었으며 기술관료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기구를 설립하였고 외국자본에 대한 차별을 종식시켰다.
2. 조정의 정치
박정희는 급진적인 ‘경제안정을 위한 긴급조치’를 통해 재빠른 조정을 선택하였으나 이 조정결정은 시장에 의한 조정의 사례라고 볼 수 없었다. 또한 긴급조치 이후 바로 중화학공업화를 밀어붙이기가 시작되었다. 부채규모가 1972년의 사채동결과 금융지원으로 급격히 감소하게 되자 재벌들은 중화학공업에 뛰어들었다. 자본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부채비율은 다시 상승하게 되었다. 재벌그룹들은 더욱 과도한 부채를 지면서 과도한 확장을 하게 되었고, 과대부채, 과소판매, 생산시설의 과소이용의 주기가 자리잡으면서 국영은행들은 더욱 큰 지불불능의 부실대출의 짐을 지게 되었다. 모든 정책적 수단이 수출총액을 늘리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한국의 경제로 하여금 호황과 불황의 주기를 반복하게 하였지만 한국은 다시 일어섰다.
한국의 성공을 가져다준 원인은 다수일 것이다. 한국이 초국적 자본이동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는 금융적으로 폐쇄적인 경제였기 때문에 한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심각한 시장의 신뢰를 급속히 상실하지 않고 부실재벌들을 위한 대규모의 구제금융의 투입을 지휘할 수 있었다. 금융경색에서 탈피하기위한 정재계 지도자들의 위험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이 엄한 권위주의 통치와 엄격한 자본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안고 있는 금융의 취약점을 알고 박정희는 각 재벌에게 ‘주거래은행’을 할당하여 주었고 주거래 은행에 기업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승인권과 감시권을 부여하였다. 그 후 박정희의 후임자는 종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