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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 개관
1. 들어가기
I5-16 세기까지 유럽의 각국은 근대사의 개막과 함께 절대왕정이 성립되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절대주의(Absolutism) 혹은 절대군주(Absolute Monarchy)의 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절대왕정이 전형적인 정치 형태를 갖추고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이 시기는 봉건제의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국내적으로는 종교전쟁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의 경쟁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간의 대립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또한,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식민지 획득과 상품시장 개척에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서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화는 대체로 15세기말 이래 진척되었다. 에스파냐는1469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디난드(Ferdinand)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Isaberra) 여왕이 결혼하여 두 나라를 통합한 후 급성장하였고, 프랑스는 백년전쟁1)이 끝난 이후 샤를르 7세, 루이 11세, 프랑소아 1세(Francois 1, 재위 1515`47)의 치세 아래서, 그리고 영국 역시 장미전쟁 이후 튜더 왕조2)가 성립되면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국가는 단순히 영역적이고 분산적인 지배에 머물렀던 종래의 봉건국가들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대조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전의 봉건국가들에서 왕권을 제약했던 신분의회-이를테면 에스파냐의 코르테스, 프랑스의 삼부회-는 점차 약화되었고, 그 대신 국왕이 중앙 및 지방행정을 담담할 관료조직의 정비와 함께, 국내치안과 방어를 목적으로 상비군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에스파냐의 레트라도스(letrados), 프랑스의 지사(intendent)제, 영국의 치안판사제 등이 재정비된 관료조직에 해당한다.
상비군의 전형적인 예는 에스파냐의 보병군(tercio)과 프랑스의 칙령군(compagnies d`ordonnance)을 …
2. 절대주의와 왕권신수설
(1) 절대주의의 개념
사의 한 특정한 시대에 출현한 정치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절대왕권정치는 이집트의 전제군주나 로마의 창제체제에서 이미 나타나기는 하지만 가장 과장된 형태와 세련된 이론으로 합리화된 것은 17세기유럽의 그것이다.
절대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온 것은 계급균형론 내지는 과도정부론이었다. 이 견해는 舊귀족 및 영주의 몰락과 부유한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시민계층의 등장을 중시하여 절대왕정은 이 상호 대립되는 귀족과 시민의 양 균형 위에서 그 양 계급의 조정자로서 독자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을 보유하는 과도적, 예외적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가교의 시대라고 말 할 수도 있는데 봉건제도 그 자체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폐지한 것이 아니고 영주와 교회의 권력을 절대군주에게 통합시키고 또한 신흥시민계급의 지지를 받아 그 위에 군림하는 정치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왕권은 제후들로부터도 또한 시민들로부터도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 등장하여 그 이전부터 있어온 신분제의회마저도 그 기능이 점차 정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절대군주에게 집중화된 절대권력은 봉건영주와 교회의 권력에는 대립되는 것이나, 봉건제도 그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이러한 진력의 집중은 봉건제도를 민족적, 전국적인 대규모로 재편성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화된 절대왕정의 정치권력은 그 본질상 일반 개개의 영주와 교회의 정치권력 즉, 지방분권적 정치권력과도 상반되는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정치형태인 자유주의의 정치권력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물론,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은 통일민족국가를 형성하여 봉건적 신분관계를 대신하는 시민적인 자유평등의 토대를 닦고 중상주의에 의하여 Guild 5) 제도를 Manufacture 체제로 전진시킴으로서 시장의 확대를 초래하는 등 자본주의적 발전을 허용하였으나 그것은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