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일제 하의 서울
Ⅰ. 교통
Ⅱ. 교육
Ⅲ. 중심지의 변화
Ⅰ. 일제하의
서울의 교통
도로의 정비지역별 정리세종로을지로종로남대문, 경성역부근
광화문통(세종로)
조선총독부 앞거리 : 현재의 세종로
이 길 좌우에 의정부와 6조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육조거
리`로 불림
조선시대 : 제1의 도로-`일제의 도로정비-`폭이 축소됨
조선시대 : 육조거리 -` 1914년 이후: `광화문통‘ -` 광복
이후 : 세종로
황금정통(을지로)
서울시청 앞에서 동대문 운동장 앞까지의 길
조선시대 구리개. 지금의 을지로 입구~광희문까지 연결
되던 길
조선시대 : 구리대 -` 1927년이후 : 황금정통 -` 광복이
후 : 을지로
조선인의 거리, 종로
종로 : 도성의 문을 여닫게 하는 종루 때문에 붙여진 이름
조선시대 : 한양의 동, 서를 잇는 간선도로로서 가장 넓은
도로
일제 때 : 이전보다 좁은 28M로 개수됨.
광복 후 : 1952년에 폭 40M로 확장하기로 계획.
1974년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대부분 넓혀져 오늘에 이름
정비된 종로 거리
남대문, 경성역 부근
남대문, 경성역 부근 - 일제 때 도로의 개설과 확장이 활발
일본인들이 …
자동차, 철도, 역 - 문명의 상징. 허나 일제가 철도를 놓으
면서 철도용지로 부근의 조선인 토지를 모두 빼앗음. 또
조선인들을 강제부역으로 철로노역을 시켰으므로 원한이
깊었음
철도 - 수탈의 파이프라인, 일본군과 경찰의 한반도와 대륙
이동라인
가난한 조선인이 타기에는 기차 삯은 비쌌음
한강철교
한강철교가 생기기 전 - 나룻배로 건넜음.
[임금이 행차할 때 : 배다리를 만들어 건넘]
1900년 : 한강철교 준공
1917년 10월 : 한강인도교 준공. 한강 최초의 다리
한강철교의 인도는 그때도 자살터였음. 이에 조선총독부는
한강인도교 동쪽에 파출소를 설치하고, `잠깐 기다리시오“
라는 팻말을 부착했으나 별반 효과가 없었다고 함
4. 항공, 수상교통
항공 (1)
“떳다 보아라 안창남이요, 굽어보니 엄복동이라”
1922년 11월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일본 도쿄
~오사카 비행에 성공
안창남은 나중에 연안으로 탈출해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나
비행기 사고로 사망
항공 (2)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은 1933년 모국방문 비행차 도
쿄를 떠나 대구로 오던 중 그의 애기(愛騎) 청연과 함께 추
락사
엄복동은 자전거 경주로 유명, 경주의 마지막 바퀴 때, 사람
들은 `들어라, 꽁무니를 들어!` 하며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고 함
나라를 뺏긴 망국민들이 조선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걸었음
을 알 수 있는 대목
한강 나룻배 (1)
한강에는 황포돛대를 단 큰 돛단배가 떠다님
강원도에서 벌목한 목재가 뗏목이 되어 내려옴
최종 종착지 : 뚝섬 -` 뚝섬에는 나무시장이 섰음
마포나루에는 새우젓배가 짐을 부림 - 서울 시내에 공급되
는 새우젓은 거의 `마포새우젓`
한강 나룻배 (2)
한강의 나룻배가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수단이
었지만, 점차 한강인도교나 기차를 이용해 한강을 넘나들면
서 나룻배는 그 기능을 상실
나룻배 한강진
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