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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투탕카멘 전시회 후기.
세계의 4대문명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 이집트 문화가 남긴 많은 역사 유물이 이집트 문명의 화려함을 증거하고 있다. 잘 알려진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미라 등 여러 유물 가운데서도 이번에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큰 보물 발견이라 말하는 투탕카멘 파라오에 관련된 유물 전시회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역사유물을 보려면 약간의 이집트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잠깐이나마 이집트 역사에 대해 말하자면 지금부터 6,000년 전 이집트는 주민의 생업과 정치, 종교, 문화의 정서가 서로 다른 두 지역처럼 나일 삼각주의 하이집트와 상류지방인 상이집트로 나누어졌다. 상이집트는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이용할 만한 토지가 점차 줄어들고 생산성도 떨어져 가는 나일 강변의 좁고 긴 지역이었다. 하이집트는 오늘날 카이로 북부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있는 인구가 밀집된 풍요로운 땅으로 다른 이민족들과의 교역과 교류가 육지와 바다를 통해서 활발이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그후 1,00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적대하고 경쟁하던 상, 하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 무렵 상이집트의 나르메르(혹은 메네스)라는 왕에 의해 최초로 통일되어 수도는 중간지점인 나일 델타 곡창지대가 시작되는 멤피스에 건설되었다.
나르메르의 통일은 이집트 민족의 통합과 이집트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통일 후, 이집트는 강력한 사회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를 제1왕조, 제2왕조라 하는데 이집트는 정부 조직과 행정 체계, 건축과 토목 기술, 예술 등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집트 인들의 문자 체계인 히에로글리프도 정비되었고, 1년을 365일로 하는 역법이 완성되었다. 기원전 약 2800년경의 제3왕조의 2대 군주 조세르는 이집트 왕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피라미드를 건설한 군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피라미드 역사의…
터 이집트 땅에 들어와 정착한 아시아 쪽 외국인들이 제16왕조와 제17왕조 시기에는 이집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힉소스(이민족 통치자들)라고 부른다.
아시아 인들의 지배는 이집트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는 전기가 되었다. 새로운 악기와 음악 양식, 청동 세공술에서 도자기 제조, 베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품종의 곡물과 곡식이 도입된다. 전쟁에는 새로운 유형의 무기와 아울러 전차와 말이 등장하였다. 제13왕조 때부터 힉소스 지배가 끝날 때까지의 혼돈기를 제2중간기라 부른다. 제18왕조는 이민족 힉소스의 지배를 벗어 던지기 위해 여러 대에 걸쳐 투쟁하던 테베의 왕가 출신 아흐모세가 열었다. 그는 힉소스의 세력을 델타 지역에서 소탕하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으며 이집트의 옛 영토를 회복했다.
그후 투트모스 3세는 스스로 이끈 여러 차례의 원정전에서 승리하면서 이집트의 옛땅을 수복하고 아시아 지역을 편입하여 `나일 제4폭포`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이집트의 정치 세력은 아멘호텝 3세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는 황금의 호루스, 진리의 통치자, 상하이집트의 왕, 라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 중 가장 논쟁이 대상이 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테베의 수호신 아문을 버리고,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교의 신 개념을 확립한 종교 개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를 중부 이집트의 알-아마르나로 옮기고 신도시 아케타텐(아텐의 지평선)을 건설하였다.
신왕국시대에 누렸던 영화는 1922년 발굴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왕가의 계곡`에서 출토된 화려한 부장품들, 그중에서도 파라오 시신의 얼굴 덮개인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 등으로 확인된다. 제19왕조는 람세스 1세부터 시작한다. 그의 뒤를 이은 세티 1세는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 히타이트 왕국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나일 삼각주로 들어오려는 리비아 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였다. 3대 군주 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