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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박노자라는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한겨레칼럼이었다. 외국인의 인상을 가진데다 너무 어려운 말을 쓰며, 유럽식의 진보주의 생각을 계속 설파했기에 ‘이 사람이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펴든 이 책에서 나는 이 사람의 통찰력과 사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책의 이야기에는 중에 이런 우리의 전통적인 공격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태극전사 일본 격침’같은 이야기 등이다. 사실 스포츠라는 것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이 세태 자체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실상 옳은 이야기가 아닌가 스포츠는 그 운동 능력을 겨룰 뿐 국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며, 운동대회의 기원이라는 올림픽자체도 그리스 도시국가 간의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기원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단어는 단지 운동경기에 불과한 것을 마치 국운이 걸린 것 같은 전쟁터로 탈바꿈 시키고, 애국자 비애국자를 가르는 흑백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해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도 계속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의 실태는 심각하다. 좋은 취지로 나온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그들을 비정규직 일회용품으로 만들어버렸고 기존의 있던 문제(외국인 불법 체류자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자신도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한국국적으로 노르웨이에 교수로 가 있다)생활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백인이기에 특혜를 보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우리가 가진 마음가짐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로 가기에는 다소 모자란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내게 던진다. 필자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초췌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동남아의 외국인들에게 겁을 먹고 다소 불친절하게 굴었던 기억이 있기에 반성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처한 비정규직 문제도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긴…
마저 의식해서 밟아야만 하는 시대를 뒷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차마 들지 않는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국가는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분명 변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갈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진리-보다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이 최고라는 것-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박노자만큼 진보적이지도 지혜롭지도 않으며 공부도 부족하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귀화인인 그 만큼 대한민국을 사랑한다고 자신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한 단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확신만큼은 그에게 뒤지지 않으며 그것이 시간을 넘어 언젠가는 이루어 질 것이라는 생각도 확고하다. 오랜만에 좋은 이정표를 만난 것 같아 행복감을 느끼며 감상문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