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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이후 국민과 행정부 간의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사회적 위기로 볼 수 있는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는 곧 대정부 신뢰 저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일어난 용산 참사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불러오며 이는 곧 국가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MBC의 신경민 전 앵커는 이러한 무리한 진압 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 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도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 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란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듯 나는 이번에 용산참사에 대해서 초점을 두어서 따른 한국행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알아 보겠다.
□ 용산참사 개요
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33분경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약 30여명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5층짜리 상가건물 옥상을 점거하였고 이에 맞서 경찰은 경비 병력으로 3개 중대 300여명을 투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옥상건물 위에 망루를 짓고 상당량의 가연성 물질인 시너를 옥상에 준비하는 동시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철거반에 저항하였고 이에 대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대치하게 되었다. 1월 20일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농성장 옆 상…
□ 용산참사 발생 직후
2009년 8월, 조합과 철거민 간 이견이 다소 좁혀지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으나, 철거민 측에서 “정부 측의 책임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임시상가 등 추가요구를 제기하면서 협상은 타결되지 않음
□ 용산참사 결과
□ 용산참사 논란
1. 화재 원인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