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 생애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피페의 커크칼디의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친구였던 프란시스 허치슨으로부터 윤리철학을 공부하였다. 1740년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옥스퍼드대의 생활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며 1746년에 자퇴하였다. 1748년에 케임즈 경의 후원 하에 에딘버그에서 공개강의를 하게 되었고, 강의에 대한 호평이 계기가 되어 1751년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강좌의 교수가 되었다. 1750년경 데이비드 흄을 만났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1759년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된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발표하였다. 1764년부터 2년에 걸쳐 프랑스등지를 여행하며 중농주의 사상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들의 사상과 이론을 흡수하였다. 귀국 후 저술활동에 전념하여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다. 그 뒤 글래스고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 뒤 1790년 사망하였다.
2. 시대적 사상적 배경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기는 산업혁명의 초기로 농촌에서 성장한 신흥 공장제 수공업자들이 근대적인 시민계급으로 성장하여 보호통제의 중상주의적 사회질서가 자유로운 근대시민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분업에 기초한 제조소 형태를 띤 대규모 산업자본주의의 탄생은 애덤 스미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한 배경이 되었다.
첫째, 사회전체를 분업이 행해지는 거대한 작업장으로 보았다. 둘째, 상업 및 농업노동과 더불어 공업노동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서로 다른 생산 분야들 간의 교환을 동일량의 노동지출에 기초한 등가생산물의 교환으로 보…
3.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
cf. 중농주의
4. 국부론
(1) 분업
스미스는 무역장벽이 국가의 생산 능력을 저해하므로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무역 확장으로 두 나라 모두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에 대해 “모든 평범한 가정의 살림에서 이로운 것이 위대한 왕국의 나라 살림에서 바보짓이 되기는 극히 어렵다. 만일 외국이 우리가 직접 생산 할 수 있는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그것을 사는 편이 낫다.” 라고 언급하였다.
cf. 중농주의
중농학파란 18세기 후반의 프랑스에서 케네(Quesnay,F.) 및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형성된 경제학파를 말하며, 그들이 주창한 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을 중상주의라고 한다. 중농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과 유통의 법칙을 인간의 의사나 정치 등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법칙으로 파악하였으며, 국가의 부의 원천인 순생산물=잉여생산물은 유통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생산에서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중농주의는 단순히 경제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프랑스를 재정적 곤경에서 구하기 위해, 농업생산을 발전시켜야 하며 농업자본의 축적을 촉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농업에서 잉여가 커지면 상공업도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대농경영의 경제적 우위성을 역설하였고 중상주적 통제나 불경제인 조세제도의 발상을 제창하였다. 그들이 농업만이 잉여생산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시 프랑스가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4. 국부론
정식명칭은 《국가의 부(富)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考察)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이 대저에서 스미스는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생산의 기초를 분업(分業)에 두었다. 그는 분업과 이에 수반하는 기계의 채용을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며, 자유경쟁에 의해서 자본축적을 꾀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정도(正道)라고 역설하였다.
(1) 분업
애덤스미스는 `국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