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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영화를 보며 문화가 생활을 뛰어넘는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중간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는 감량을 위해 치즈 한 장으로 연명하며 그것도 모자라 설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이 필수적인 성격이 강한 생활이라면, 옷을 잘 입는 것과 식사예절을 정확히 알고 지키는 것은 문화의 범주이다. 그런데 경제적인 상황이 호전되면서 기본적인 생활의 어려움이 사라지면 점차 문화가 각광받게 되고 결국 문화가 생활을 앞서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가령 과거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살을 빼고자 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았으나, 먹는 문제가 해결 된 현대사회에서 살을 빼는 것을 넘어 적정체중 이하로의 여정을 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는 식이다.
이것은 일면 잔인한 측면을 지닌다. 문화라는 것은 일종의 유행인데 일률적인 유행은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유행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들을 낙오자로 만들어 버린다.(가령 뚱뚱한 이들을 자리관리의 실패자로 만드는 것이라거나 패션 감각이 뛰어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좋은 예이다) 현재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 범주 속에서의 변화와 특이함은 개성으로 인정되지만 그 범주에서 벗어난 개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유행으로 대표되는 문화의 특성인 것은 아닐까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은 앤 헤서웨이에게 “모든 사람들은 우리처럼 화려하게 살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 우월성(영화 속에서는 패션)이 절대적인 가치임을 내세운다. 영화 속 앤 헤서웨이도 그러했지만 나 역시도 이 의견에 동감할 수 없다.
문화는 여가시간을 이용한 즐거움이 그 출발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안에는 당연히 심리적인 압박보다는 즐거움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유행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 속도…
을 벗어 던진다. ‘경비 노조’에 관한 글을 쓰던 도전적인 젊은이로 회귀하는 것이다.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만 내게 의문을 남긴다. 문화나 유행이라는 요소를 무시한 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를 혼자만 고수하려는 고집이나 아집은 아닌가 상황적으로 같지는 않지만 내가 저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사회학을 처음 배우면서 행위와 구조라는 개념을 배운 것도 떠올랐다. 구조의 변동은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 혼자 변화를 꿈꾸었다가는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고 느낀다. 옳지 않은 방향이고 긍정적이지 않은 방향이다. 소수의 향유자 외에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하고 경쟁적인 시스템이다. 인간생활에 문화는 이미 중요한 부분으로 들어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가생활이 우리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 할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은 크나큰 위기이다.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생각을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다양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창출시켜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주인인 우리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