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제1) Lloyd`s(로이즈)의 역사와 발전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요약설명.
로이즈의 역사
17세기 후반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란 사람이 템즈강변 선착장의 가까운 곳에 커피점을 개업하여 선주, 선장, 무역상 등 해사관계자에게 선원이 가져오는 정보를 재빠르게 전달하여 해난사고의 소식을 전달하여 항해관계자나 보험업자의 집회소가 되어 다른 커피점을 누르고 해상보험거래의 중심이 되었으며 1692년 항해동향과 그밖의 다른 소식을 전하는 《로이즈뉴스 Lloyd`s News》지를 발간하였고 이것은 1734년에 출간한 《로이즈리스트》지의 전신이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보험사업이 극도로 번창하게 되자 로이드커피점에서도 도박보험이 성행하게 되고 이를 반대하는 성실한 보험자들은 1769년에 Pope`s Head Alley에 New Lloyd`s 커피점을 설립하여 일종의 회원제로 운영하였고, 뒤이어 1774년에는 「로이즈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Angerstein, J.J.에 의해 Royal Exchange 안에 Room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로이즈의 Coffee House시대는 끝나고 보험거래소로서의 Lloyd`s가 새로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1871년 Act of Parliament에 의해 Corporation of Lloyd`s로서 법인화 되었고, 1887년경부터 Lloyd`s는 해상보험 이외의 소위 non-marine의 분야에서도 그 활동영역을 넓혀 갔다.
그리고 1911년에 이르러 모든 종류의 보험 사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재정적인 면에서 문제가 계속되자 1982년 의회에서는 새로운 로이즈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서는 이권을 둘러싼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중개인이 보험업자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이권의 양을 규제하였다. 또 공식 감독기관을 설치하고 내부에 징계위원회와 상소 법원을 두게 하였다.
이 협회는 보험업자의…
과 기기를 위한 보험수요가 증가하였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자들의 중요성이 증가하여 여러 종류의 사회보험이 개발되었다. 당시에도 영국은 보험의 발달을 주도하였는데 로이즈는 보험시장이 혼란해지자 언더라이터와 브로커의 자격을 제한하여 회원(Lloyd`s Member)을 선별하였고, 1811년 로이즈 최초의 성분법인 신탁증서(Trust Deed)를 제정하였으며, 1871년 로이즈법 제정에 의해 법인으로서의 로이즈 조합(Corporation of Lloyd`s)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62년 이후 보험회사 설립 붐과 기선의 대형화로 인한 보험가액의 증가로 인해 로이즈의 해상보험 인수는 극심한 경쟁에 부딪히게 되나 프레드릭 윌리암 마튼(Frederick William Marten)의 대형 신디케이트 구성은 다시 해상보험을 로이즈 시장으로 유입시켰다.
1912년 매튜스 라이튼사(Matthews,Wrightson & Co.)가 로얄항공클럽에 프라이머스보험증권(The Primus Policy)을 제시하여 채택된 뒤 이 보험증권유형은 1차 세계대전까지 널리 활용되었고 비해상보험의 개척과 함께 미국 보험시장은 로이즈의 번영을 가져왔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발생 이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보험회사들과는 달리 로이즈 언더라이터는 보험증권에 명기된 면책조항을 무시하고 지진이 발생한 뒤 1주일 이내에 보험금의 지급을 개시하였고 이를 계기로 높은 신용을 얻은 로이즈와 미국의 관계는 급속히 진전되었다. 또 1차 대전은 로이즈에 독일보험회사의 붕괴로 인한 많은 보험의 집중이라는 행운 가져다 주었으며 비행선과 1930년대 이후 대규모의 항공기의 개발에 따라 그 보험을 인수하기 위한 전문적인 신디케이트가 구성되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브로커들의 영국 정부의 대외지급 제한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해[미국 신탁기금]을 설정하였다. 전세계 보험료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보험료의 65%가 외국으로 유출되고, 그 중 다시 반 이상이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