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과연 법은 도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인가
목차
1. 서론
- 법과 도덕의 관계
2. 본론
- 행복추구권 vs 사회의 안정
3. 결론
1. 서론
“역사는 소문을 증류한 것이다” - 토마스 칼라일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오딧세이의 초반부는, 몇 번을 다시봐도 무척이나 지루하다. 1968년 관객들은 2001이라는 숫자에서 종말론을 초극한 미래의 희망을 예감했을 것이며, 당시에 시작된 우주탐사 붐으로 말미암아 스페이스라는 단어에서 인류의 진보를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오딧세이라니. 이 얼마나 고풍스러운가. 따라서 영화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까운 미래의 긍정적인 외형과 공상의 가벼움을 상쇄할 고전적인 철학을 천의무봉같은 영상미로 봉합, 관객들에게 황홀한 쾌감을 선사해줄 뉘앙스를 풍겼음은 주지의 사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광활한 대우주 대신 누런 황톳빛이 도는 벌판을, 보석같은 별들의 향연대신 진보가 덜 되었음직한 성성이들이 돌아다니는 건조한 영상으로 -그것도 무려 20여분간- 시작한다. 시대차에 헤매는 현재 관객 외에도 당시의 관객들 역시 꽤나 힘들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루한 챕터가 달리 보면 무척이나 의…
2. 본론
“간통죄라니, 언제부터 형사랑 검사가 내 아랫도리를 관리해 온 거니”
포유류의 97%는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늑대와 여우도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에 속한다. 하지만 포유류의 대부분은 섹스를 위해서, 혹은 자식 양육을 위해서 한동안 함께 지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 (만프레트 타이젠, `러브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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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과 법으로 비난, 처벌하여 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왜 유전적인 개량의 확률을 높이는 방향보다 그것을 금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일까. 여기에는 안정된 가정을 통한 사회구조의 발전을 더 큰 가치로 여겼던 시절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사회 혹은 국가를 이루어 살면서 나 자신이 보호받고,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향유하여 보다 나은 삶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섹스가 그토록 엄격하게 억압당하는 것은 섹스가 전반적이고 집약적 노동력의 동원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의 원칙이 점점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동력이 조직적으로 착취되는 시대에 노동력의 재생산을 허용하는 최소한으로 한정된 쾌락 이외의 다른 쾌락 때문에 노동력이 허비되는 것을 용인할 수 있을까”(성의 역사, 미셀푸코)
이는 성의 억압이 단지 그 자체로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결국 푸코의 말대로 성을 억압하여 집단의 발전을 목적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는 말로 권력의 속성을 정의한 미셸 푸코에 따르면, 성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소수의 인간이 성적 순결을 강조하는 도덕과 법을 제정한 이유는 타 인류를 노예로 보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본능을 죽이고, 욕정을 거세하고, 그 잉여 에너지를 생산성에 기여하라는 논리 아닌가. 결국 성의 억압과 관련된 담론들은 모두 권력으로 이어지고 권력은 사유재산과 지배계급 안정화에 언제나 기여해 왔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해서 성매매특별법, 간통등의 법률로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인류사에는 이러한 폭력적 논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의식의 문제를 다투기 앞서 호구지책을 걱정했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당시의 수혜로써 지금 내가 사고하고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더 이상 인류에게는 성을 억압하는 폭력적 논리는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리에 따른 법 체제가 진보한 시대의식과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 두가지 판례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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