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발레-
◇발레란 무엇인가.
유럽에서 발생하여 발달해온 무용형식.음악 팬터마임 의상 장치 등을 갖추어서 이야기나 주제(主題)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무용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극무용 극무용(劇舞踊) 극장예술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발레란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의 동사 ‘balla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다리의 포지션에 기초를 둔 클래식댄스의 정형기법(定型技法)을 기준으로 하여, 그 기법을 사용하는 무용까지를 발레라 하고 이 기법에 구속받지 않는 무용을 모던댄스라고 하여 발레와 구별하고 있다. 또, 파 드 되(pas de deux) 형식이나 독립된 팬터마임 장면을 쓰는가의 여부에 따라, 이러한 요소가 들어 있는 무용을 클래식발레라 하고 그렇지 않은 무용을 모던발레라고 한다. 1. 역사
발레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탄생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1489년 이탈리아의 토르토나에서 베르곤치오 데 보타라는 부유한 예능애호가(藝能愛好家)가 밀라노공(公) 갈레아초 스포르차와 그의 신부(新婦) 이사벨라를 위한 결혼 축하연에서 상연된 《이아론과 금의 양모(羊毛)》라는 발레였다. 당시의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한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무용수가 모여서 추는 춤, 발리 또는 발레티라는 일종의 사교 댄스, 극적인 성격을 갖춘 무대무용인 브란디, 모리스카라는 즉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무용 등 4가지 춤이 혼합하여 발레가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에…
따라서 이들은 다 같이 철저하게 의상의 개혁을 이룩하였다.더 나아가서 노베르는 18세기 후반에 당시 발레에서 노래와 낭송을 모두 배제하여 시종일관 드라마로 엮어나감으로써 오늘날의 발레의 원형(原型)을 세웠고 가면까지 폐지하였다. 가에타노 베스트리스는 클래식 발레의 꽃인 그랑 즈테를 발전시켰으며, 1770년경에는 안나 하이넬이 한쪽 발의 회전, 즉 비르에트를 출 수 있게 되었다. 1811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의 안무사가 된 S.비가노는 의도하는 바를 여러 작품으로 무대에 상연하였고, 무용가의 개성을 중시하여 연극에서 연출가의 경우처럼 무용가를 다루었으며 군무의 동작도 고쳤다. 특히 그의 문하생 브러시스는 발레교육에 힘써 많은 저서를 펴냈고 또 타이츠가 발명되어 도약의 기법이 더해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세기 초에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 정신은 발레에도 흘러들어와 1830년대부터 로맨틱 발레가 개화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음악 문학 회화에서 낭만주의를 꽃피운 위대한 에술가가 있었던 것처럼, 발레에서도 일대를 풍미한 M.탈리오니가 연습을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도약이나 비르에트의 기술은 크게 진보해 있었다. 그녀는 프왱트 기법을 써서 공중에 두둥실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관객을 사로잡았다. 32년에 상연하여 발레사상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 《라 실피드》는 그녀가 없었으면 나올 수도 없었다고 한다.로망티슴의 지상적(地上的) 화신(化身)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빈 출생의 F.엘슬러가 탈리오니의 경쟁자로 등장하여 로맨틱 발레는 더욱 풍부한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26세 때 파리에서 《절름발이》 등에 출연, 크게 인기를 끈 엘슬러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순회하고 탈리오니가 러시아에 있는 동안에, 파리 오페라극장에서는 또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하였는데, 바로 《지젤》을 연기한 C.그리시이다. 그녀의 춤은 공중적인 탈리오니, 지상적인 엘슬러를 동시에 갖추어, 말하자면 로맨틱 발레의 2가지 요소를 합친 것이었다. 이 3사람의 발레리나는 당시의 발레계(界)를 주름잡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