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목차 소개
: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과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를 살펴보기 앞서 이해가 쉽게 되도록 간단한 용어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가장 핵심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는 네오리얼리즘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배경이 다 깔리셨으면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중 가장 유명한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의 배경과 줄거리, 그리고 제 나름의 해석 등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영화를 통해 네오리얼리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감독 로베르트 로셀리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2. 용어 정리
: 파시즘, 레지스탕스
3. 네오리얼리즘
: 네오리얼리즘은 1940년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문학유파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이탈리안 리얼리즘이라고도 하죠. 쉽게 말해 신현실주의라고 보면 됩니다. 당시 파시스트가 지배하던 정권아래의 영화감독들은 독일의 나치즘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였지만 파시즘의 선동의 선전 영화나 또 그 반대로 허황된 코미디와 멜로물이 판을 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는 폐허와 잿더미뿐이었던 반면에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살펴 볼 수 없게 되자 젊은 영화인들이 기존의 제도적이고 시스템적인 영화 제작 방식에 탈피해 실제 거리로 나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즉, 파시즘에 대한 하나의 대항으로 실제 서민들의 생활환경의 모습을 생생하게 찍어내었습니다.
다음으로 네오리얼리즘 시대의 영화들을 살펴보겠는데요. 1942년 루치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이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네오리얼리즘의 서막을 열었던 비스콘티는 나중에 네오리얼리즘이 소멸할 때…
4. `무방비 도시`
다. 조르조와 함께 도움을 주었던 돈 신부도 적발되게 되죠. `무방비 도시`의 마지막 장면은 신부의 차형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돈 신부가 죽기 직전에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게 더 힘들다”라고 말하는 데 이 장면에서 영화는 다시 숙연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처형 부대가 총을 겨누자 형장 너무 울타리에서 신부와 함께 축구도 하고 재밌게 놀던 아이들이 무언의 함성으로 휘파람을 붑니다. 멜로디도 없고, 단조롭고, 슬프며 어떤 희망도 담겨 있지 않은 이 휘파람은 무언의 함성으로 오늘날까지도 고발의 메아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군인들은 차마 신부를 쏘지 못하죠. 그러나 독일 장교가 결국 신부를 처형시킵니다. 신부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아이들의 모습으로 장식하는 것은 아이들이 이탈리아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영화속 배경은 실제 현장입니다. 전쟁 중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로셀리니와 몇몇 배우들은 자신의 옷가지를 팔아 충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무방비 도시`가 자국에서 첫 공개될 당시 그들을 감싼 것은 냉랭한 공기였습니다. 할리우드식의 영화와 비교되는, 영화의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요소에 실망했던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영화를 보기가 불편했던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이 영화는 자국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쉽게 동일화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보다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영화는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1961년이 되어서야 독일에 소개되게 됩니다. 영화를 내보낼 당시 배급사에서는 “이 영화는 독일 군인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도입부에 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