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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의 민속 사례
- 놀이문화를 중심으로
`의성 기와밟기` 1. 의성 기와밟기
놋다리 밟기는 작은 보름과 대보름날 밤에 경상북도 일대에서 부녀자들이 행하던 놀이로 의성에서는 `기와밟기`라고 하며, `동교(銅橋)`,`인다리`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인다리`는 인교(人橋)라는 말로,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앞 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 안아, 긴 다리를 만드는 데에서 온 이름이다.
의성의 `기와밟기`는 허리를 굽힌 모양이 휘여진 골기와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기와밟기`는 부녀자들이 남북 양편으로 갈라져서 놋다리를 만들어 맨 뒷 쪽의 사람부터 한 사람씩 순서대로 건너게 하고 다 건너간 뒤에는 내려서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놋다리를 구성한다. 놋다리를 차례로 건너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리를 빨리 건너가는 내기를 하며, 이 때 남자들은 농악을 치고 함성을 질러서 응원해 준다. 그리고 이것이 끝나면 `꼬께내기`라고 하여 다소 우악스러운 경기를 벌인다. 건강한 여자 네 사람이 손을 미음자 모양으로 잡아 목마를 만들고 이에 힘이 좋고 뚝심이 센 여자를 태우며 말 주위에 호위꾼을 세운다. 양편의 말이 근접하면 서로 옷이나 머리채를 잡아채고 상대방을 밀어내려고 애 쓰며 관중들은 응원으로 고함을 지르고 농악대는 깨어질듯 한 소리를 낸다. 이 사이에 말 위의 두 사람은 서로 엉겨 붙어서 상대를 말에서 떨어뜨리려는 육탄전을 벌인다. 이 싸움은 어느 쪽이든지 말에서 떨어지는 쪽이 패하게 된다.
`의성 기와밟기 민화`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다리를 걸어갈 동자(童子)와 공주(公主)를 미리 뽑아 성장을 시키고 등 위를 걸어가게 하며 좌우 양쪽의 시녀 두 사람이 손을 높이 들어 부축해 준다. 엎드린 사람은 공주가 지나간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굽힌다.
또 노래를 부르는 순서는 맨 앞에 선 창립(創笠)들이 선…
이 기와는 뉘 기완가
떠나 12월 중순에 안동에 도착해서 머물다가 이듬해 2월 말에 환궁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 놀이의 특징은 대보름날 보름달 아래서 부녀자들이 놀던 놀이라는 것과, 조선시대의 엄격한 사회제도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쫓아내고 놀이를 즐겼으니, 여성 해방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구(器具)의 사용은 없고 옷도 평상시 그대로이다.
`의성 가마싸움`2. 의성가마싸움
가마싸움은 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명절맞이 성장(盛裝)을 한 양쪽 학동들이 유다리에서 조우해 상대방의 가마를 먼저 부수는 편이 이기게 되는 학동들 놀이이다.
의성읍 아사천을 경계로 남북의 서당 학동 6~70명이 한편이 되어 접장을 수령으로 삼아 추석이 가까워지면 훈장이 귀향한 틈을 타서 행사준비를 하고 각 서당의 학동 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와 기 제작이 끝나면 15일 전까지 가마를 끌고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15일이 되면 학동들은 가마를 끌고 각각 출신 부촌을 주행하면서 기세를 올린다.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15일 오후가 되면 양군은 유다리 남북쪽에 대진하여 진세를 가다듬는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남북군의 수령은 먼저 유다리 위에서 서로 인사를 교환한다. 수령의 인사가 끝나면 남북이 각각 전투 태세로 부서 이동을 한다. 수령은 각조의 조장과 영기를 모아놓고 작전협의를 갖는다. 작전지시가 내리면 서전으로 양군 공격대는 장사진을 펴고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해 석전을 시작하고, 석전이 끝나면 가마몰이가 시작된다. 상대방의 허를 노려가며 유다리 위를 남북군의 가마는 질주하는데, 허를 보고 적의 가마머리에 부딪혀서 한치라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남북군은 가마몰이에 안간힘을 다한다. 가마몰이가 끝나면 진법놀이가 시작되며, 진법놀이가 끝나면 남북군의 공격대는 상대편 가마를 공격하기 위해 팔장을 끼고 다리위에서 미지기 작전이 벌어진다. 한 치라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또 상대편을 기어이 밀치고 뚫고 나가서 가마를 먼저 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