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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회화와 서예
1. 고구려의 회화
현존하는 고구려의 회화는 방 안의 장식화나 감상용적인 일반적 그림이 아니다. 다만 고분 내부 묘실에 그려진 벽화 등에서 회화적 요소 등을 알 수가 있다. 특히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중국과 가장 근거리에 있었던 탓에 중국미술을 접하여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풍부한 내용과 회화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 고구려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회화를 대변해 주는 자료로 손색이 없다.
벽화가 그려진 고분은 만주 통구(通溝)와 평양 부근의 용강군(龍岡郡), 대동군(大同郡), 강서군(江西郡) 등지에 걸쳐 50여 기가 발견되었다. 낙랑(樂浪)매체로 하여 중국 한(漢)나라 묘(墓)의 영향을 받아 축조되기 시작했다고 추정하는 이 고분들은 묘실(墓室)의 구조나 벽화의 내용 및 양식에 따라 대체적으로 3기로 나누어 보고 있다.
(1) 초기 - 4세기~5세기
현실(玄室) 앞에 전실(前室)이 있고, 다시 전실의 좌우에 측실(側室)이나 감(龕)이 달린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다.
돌을 쌓아 만든 묘실의 벽면에 석회를 바르고, 그 표면에 묵선(墨線)과 채색을 사용하는 화장지법(化粧之法)으로 벽화를 그렸는데, 내용상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묘주(墓主)의 초상이다.
-안악 3호분(安岳三號墳) : 묘주 및 묘주 부인의 초상화, 행렬도 등
-덕흥리 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境) : 묘주의 초상화 및 13군 태수도, 행렬도, 사냥도 등
(2) 중기 - 5세기~6세기
전실(前室)과 현실(玄室)로만 구성되고, 이 시기 벽화에는 묘주 부부의 모습이 아직 나타나기는 하나 단독 초상화식이 아닌 그들이 생전에 겪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표현되는 게 많다. 따라서 기록적, 설명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며 그림은 자연스레 풍속화적인 요소를 띄게 된다.
이에 반해 말각조정…
(3) 후기 - 6세기~7세기
2. 고구려의 서예
(1)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2) 을묘년명호우(乙卯年銘壺)
(3)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
(4)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
비(中原高句麗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