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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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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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세력 내 분열
3 1운동 이후, 민중의 정치적 자각과 진출이 높아지면서 민족운동이
국내외에 전개
이에 일제는 `문화정치`라는 기만적인 개량정책으로 민족독립운동의 분열과 약화를 모색
(특히 실력양성운동을 일제 지배하에 자치를 이루는 것이 목표인 자치운동으로 전환시키려 함)
1925년 1월에 발표된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이 자치운동의 출발을 알림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가 총독부에 포섭되어 친일파로 전락
→실력양성을 통해 독립을 꾀하던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는 일제와 협력을 통한 실력양성을(타협적 민족주의) , 다른 일부는 일제와의 협력을 거부한 실력양성 운동(비타협적 민족주의)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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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독립운동의 분화
민족주의자
(실력양성운동)
타협적 민족주의자
최 린
이광수
최남선
자치론:
당장의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자치운동 주장
민족 개조론:
독립보다 민족성 개조가 먼저 필요
참정론:
당장의 독립보다는 총독부 정치에 참정하여 정치적 역량을 먼저 양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조만식
이상재
민립대학 설립 운…
의 식민지 지배기관 철폐와
조선인에 대한 차별교육을
금지할 것을 주장
2. 여성 단체인 근우회가 조직되어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활약
3. 민중계몽활동:
민중 대회를 개최하고 전국 순회
강연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
1927년 5월에 조직된 항일여성운동 단체
신간회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띄고
민족주의 여성 운동계와 사회주의 여성운동계가 주동이 되어 한국여성의 대동단결을 꾀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전개하려는 취지
주요활동: 여성문제 토론회. 강연회 개최. 야학 실시.
문맹 퇴치. 광주학생운동 및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자들이 그들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함으로써 민족주의 계열의 여성운동자들과 사상적 차이가 벌어짐. 1931년 신간회 해체를 전후하여 해산
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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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 운동과 연대:
농민, 노동자층으로 대중적으로 기반 확대를 통해 노동쟁의, 소작쟁의 동맹 휴학 같은
대중 운동을 지원
5.1929년 11월 [광주학생사건]에서의 신간회 활동
- 광주학생독립운동이 터지게 되는 1929년의 연초에는 신간회의 지회가 144개, 회원은 3만9천여 명에 달해
각 지역의 청년, 노동, 농민운동을 지도함
- 1927년 10월 신간회 광주지회가 설립, 1927년 11월 광주 청년동맹이 결성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 청년동맹의 주요 임원들이 성진회, 독서회 등의 비밀학생조직의 배후 인물
- 학생독립운동의 확산: 신간회는 중앙간부에게 광주학생들의 항일시위를 전국 항일 시위 운동으로 확산할 것을 역설
전국적인 항일독립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대책회의 (12월 10일, 권동징, 허헌 등)
12월 13일 광주학생사건 진상발표회 후 군중을 선동하여 시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