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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 암스트롱에게 묻다. “종교란”
『영원회귀의 신화』와『축의 시대』를 통한 종교의식의 변화
하루에도 종교라는 말을 수도 없이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생각이 고정되어간다. 이제까지 종교는 인문과학적으로 설명되어지는 피상적이거나 아니면 믿음이라는 불가침적인 영역으로 이루어진 현상적인 세계라고 판단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유의한 개인의 발전을 이끌 수 있지만 진보라는 가치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종교가 제대로 답변 가능할까라는 맹목적인 회의감이 들었었다. 물론 종교가 의미 없거나 비종교적인 입장에서 과학만을 맹신한 것은 아니다. 분명 주변의 상황에서 유교의 제례나 불교라는 터울 안에서 개인적인 안정과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터울로 판단하기에 집단이 작다고 판단하였고, 그리고 개인을 넘은 집단에서 가치 있는 역사의 흐름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힘들었다.
엘리아데의『영원회귀의 신화』와 카렌 암스트롱의『축의 시대』를 읽으면서 좀 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그 역할에 대한 평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엘리아데의 생각을 통해 실제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평가할 수 있었다. 즉 현대인들의 다른 모든 상황은 절망으로 이끌며, 이 절망은 인간의 실존이 아닌 인간이 역사적인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 세계 속에서 인류는 끊임없는 역사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영원회귀의 신화…
종교가 줄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늘 바쁘게 변화하고, 늘 새로운 일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좋은 측면에서의 변화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원화 세계로 들어서면서 개인의 목소리가 중요해졌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이 많이 일어난다. ‘평화’의 구호를 외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지구 어딘가 에서
되었다. 우리는 종교를 통해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반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외 없이 나아감이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은 사라졌다. 그리고 종교의 기능에 대한 믿음이 이전보다 커졌으며, 그 가치가 개인적인 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종교에 대한 믿음과 호기심이 커졌다. 이전에 절에 갔다 온 이후 수개월만인 초파일을 맞이하여 조계사에 갔을 때 종교적 아우라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실천과 외경심과의 복잡한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즉 사회 안에서의 종교의 실천적 위상이 다르게 보였다. 종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암스트롱이 말하듯이 민족적, 종교적 에고에 기초한 배타성은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종교라는 것은 맞지만, 종교로 인해 생기는 현대사회의 문제도 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가지는 근본적 의미를 왜곡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나아감이라는 가치에 있어 현대인들에게 이 부분은 아직도 종교라는 부분이 우리에게 주는 부분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원래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실현시키고, 성스러움과 속됨이라는 이원론적 내재가치를 통해 역사의 폭압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자기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런 부분이 종교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줄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늘 바쁘게 변화하고, 늘 새로운 일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좋은 측면에서의 변화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원화 세계로 들어서면서 개인의 목소리가 중요해졌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이 많이 일어난다. ‘평화’의 구호를 외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지구 어딘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