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땅, 안동
(1) 영남지역의 유교적 역사와 전통
1) 우리나라의 유교윤리 전개
유교 사상의 수용은 정치체제와 교육제도의 발전과 정비가 행해짐에 따라 이루어졌다. 임신서기석, 난랑비서문, 태학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교의 맥락 중 성리학의 도입이 이루어진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 말 안향이 원으로부터 주자서를 도입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성리학은 조선에 이르러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조선 건국 초기의 관학파들을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 등 시대적 상황의 필요에 따라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조선 건국에 협력하지 않고 지방에 내려간 학자들로 이루어진 사림(士林)이 중앙 정계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게 된 이후에는 성리학이외의 다른 사상을 철저하게 배격함에 따라 주자 중심의 성리학이 고착되었다. 17C 이후 실학자들에 의해 고증학이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사상적 주류는 성리학이었다.
2) 유교 개관
유교는 공자(孔子, BC551~BC479)를 시조로 하는 사상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 맹자, 순자에 의해 발전되었을 때의 유교를 가리켜 원시유교 또는 선진유교라 한다. 仁(공자), 義(맹자), 禮(순자)를 바탕으로 도덕성을 회복하여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秦)을 거치면서 분서갱유가 발생한다.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국가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채택한 한(漢)나라시대에는 진 이전 시기의 유교경전에 대한 독해가 어려워지자 훈고학이 발달하게 된다. 훈고학은 당(唐)나라시대까지 번성하였다. 이후 송(宋)나라 때에는 성리학(신유학, 주자학)이 발전하게 된다. 성리학은 주자가 도학(道學)을 집대성하여 완성시켰으며 한국 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이후 명(明)나라 때 발전한 주자를 비판하며 심학을 발전시켜 완성한 학문인 양명학, 실사구시와 경세치용의 전통을 내세운 고증학이 발전하였다.
3) 영남지역 유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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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남 유교의 특징
5) 안동 - 영남학파의 중점지
6) 안동하회마을
원동력이었으며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동족 간의 긴밀한 연대의식은 영남의 유교문화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5) 안동 - 영남학파의 중점지
영남학파는 이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파이다. 영남학파는 영남 북부권과 중부권에 해당되며 안동권이 주류이다. 안동지역은 태백산소백산속리산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영남 내륙의 오지로서 신라고려조선왕조를 거치면서도 언제나 정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정치적문화적 변동에 둔감한 편이었다. 또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동부 산악지대 사이에 간간이 마련되어 있는 작은 분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 지역 지배계층은 중소지주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정치적 고립과 협소한 경제적 토대를 배경으로 해서 혈연지연학연을 통해 일정한 유대관계를 맺어왔고 그 위에서 형성되었던 공통의 지역정서가 안동지역 사상의 특수한 모습을 이끌어냈다.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퇴계의 사상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을 꽃피웠으며 퇴계가 세운 서원은 안동에서 지식인을 양산하고 안동 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서원은 또한 인재교육 뿐 아니라 향약을 통해 사회교화의 중심역할까지 했다. 서원을 통해 학파와 학맥이 이어졌고 지역민은 성리학적 예법으로 교화되었다. 퇴계의 사상과 서원을 바탕으로 안동 유교 문화가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6) 안동하회마을
▲ Ⅰ-4- 안동하회마을의 모습
풍산류씨(豊山柳氏)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씨족마을로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사대부집부터 가랍집(서민 집)등 고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조선 전기에 형성되었다. 씨족마을이 만들어지는 두 가지 전형적인 모습 중에 하나인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안동하회마을의 경우 영남지역 유교문화의 특징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정몽주로부터 시작된 김종직의 학풍을 계승하여 지방을 근거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재야적(在野的)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작은 분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문화정치적